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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은폐되어 있는, 비릿하고 구역질나고 소름끼치는 쓰레기 더미들. 폐기물들. 그것이 진정 쓰레기인가,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것들인가, 자기를 상실하고 본디의 기능을 잃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할 만큼의 가치 소멸한 것들인가, 과연 그러한가. ‘폐기처분’ 된다는 말은 말 그대로 더 이상의 존재 가치가 전무하므로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재생 가치가 없는. 재활용이 될 수 없는. <러브 차일드>에서 폐기 처분의 대상자들은 노인, 혹은 팔이나 다리, 그 밖의 살아가는 데 장애가 있는 자들 등 말 그대로 보호해야 할 존재들이다. 그들은 재활용이 가능한지, 폐기처분되어야 마땅한지 심사를 거쳐 즉각 결과를 통보받고 행해진다.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인 듯 인간적인 대우나 인간적인 심성은 일말도 느낄 수 없는 현장이다. 소름끼치도록 차갑기만 하다. 과연 이것이 놀라운 상상의 세계로, 단지 소설 속 이야기로 국한되는 것일까? 단연코, 아니라 확신한다. 이는 10년 혹은 20년 후에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참담한 미래. <러브 차일드>를 읽는 내내 이것은 결코 허구에 불과하다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더 가슴 아팠고, 그렇기 때문에 더 분노했고, 그렇기 때문에 가슴 한 쪽이 먹먹하다 못해 응어리져 갑갑했다.
대량 강간 시스템으로 국가에 존속되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배제시킨 채 자라나는 아이들, 민간인 집에 소속되어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당해내며 죽도록 일해야 하는 늙은 약자들, 겉모습이 어린아이인 채로 평생을 돈 많은 관리 급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지며 그들의 성 노리개로 살아야 하는 가엾은 ‘디저트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정과 사랑 없이 내던져야만 하는 세상. 먹을 것은 줄어들고, 노인들은 늘어나고, 생존경쟁에 있어 무능력하고 기능적 존재가 없는 노인들은 폐기처분해버리는 세상. 오래 전 시행되었던 고려장과도 같은 풍습. 과연 자신의 부모를 내버리는 자식들의 졸렬한 인간미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저자의 말처럼 끔찍하고 극악무도해도 이들은 ‘인간’이다. 우리와 같은 ‘인간’ - ‘인간’이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실상이 어쩌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려왔고, 몹쓸 짓을 반복해 왔던가. <러브 차일드>는 그런 행태로서의 대물림이다. 대물림이자 결과였고, 그에 마땅한 대가였다.
<러브 차일드>는 용산 참사 사건 때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의 잘못 된 대응과 감추려 드는 속셈. 그것은 곧 가려진 채 행해지고 있는 폐기물 처리장과 흡사 닮아있다. 더욱이 노년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저자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점점 더 나이가 먹는다는 것이 두려웠고,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비단 이것이 저자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늙고 병든다는 것에 두려워하고, 더 어려보이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든 자연적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다. 때문에 글 속 ‘진’의 존재가 가엾고, 또 가엾고 가여웠던 것이다. ‘수’ 역시도 정부의 대량생산에 이용당하고, 민간인 집에 소속되어 갖은 학대를 당했다. 그들은 바로 그 전쟁터의 중심부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했고, 감내한 존재들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내내 아프고 힘들었던 만큼 이 책을 읽는 나 역시도 무척이나 아프고 힘들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그러하리라. 하지만 <러브 차일드>는 우리에게 언제고 다가올 수 있는 미래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읽는 내내, 읽은 후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이 책의 모든 것에 흠뻑 빠져들었다. 내겐 그 밖에 개인적인 의미에서도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다. 기꺼이 당신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잔인한 실상과 인간의 내면적 악랄함과 잔인함(나와 당신에게도 존재할)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