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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욕조>로 대표되는 이 책은 <혀>, <욕조>, <읽어 주지 않는 책>, <복도에서>, <해바라기밭>, <우리들의 식탁>, <붉은색을 먹다>, <면도> 총 8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하나같이 꽤나 기발한 상상에서 연유하고, 독특하고, 어둡고 외로워 보인다. 특히나 <혀>를 읽으면서부터 이미 나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하늘을 날고 있을 ‘혀’의 모습을 절로 상상했다. 누구나 말이 무서운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한마디 말로 빚도 갚고 살인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쉽게 내뱉어지고, 무수히 많은 언어로 포장된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구구절절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운으로 대신한다. 말은 때론 불필요할 정도로 넘쳐나고 포장할 수 있으니까.
<욕조>에 누워 잠을 이루는 그녀도, <복도에서>의 복도에서 책을 읽는 알랭도, <우리들의 식탁>에서 폭식을 즐기는 그녀도, 처절한 고립과 외로움의 맛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좋았다. 그녀가 말하는 이면의 모습은 지금 내 모습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모습 같기도 해서 마음이 이상했다. 그녀의 글들은 하나같이 묘하고 독특하고 떨려서 보는 내내 온전히 빨려들어 갔다. 오랜만에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만났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여운으로 남아 여러 번 곱씹게 된다.
/내 손안에 쥐여진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내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되거나 결말지어질 때가 있다. 내 인생이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듯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내 모든 일들이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있기 마련인 것 같았다. -<읽어주지 않는 책> 중에서
/우리는 김희진의 소설에서 “나는 너를 미워해.”라고 말하는 언어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나는 너를 사랑해.”를 목격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농담의 진실처럼 김희진의 소설 언어는 거꾸로 읽어야 이해되는 역설을 품고 있다. 김희진은 소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 동시대적 현재의 삶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지금, 이곳에 사는 자신의 이면을 보여 주고자 한다. -강유정<작품해설>중에서
/그래서 그녀는 붉은색을 삼키는 소설 속 인물처럼 소설을 먹고, 소설을 삼킨다. 모두 먹은 다음엔 그녀 자체가 소설의 한 징후가 되고자 한다. 이 과정들은 “빨간종”처럼 김희진을 독특한 ‘소설종’으로 분류케 하는 어떤 징표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소설종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체험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외로워지는 고립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강유정<작품해설>중에서
소설을 먹고 삼키고 내뱉은 그녀의 글이 어떤 소설적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지, 나 역시 벌써부터 그녀가 뱉어낼 것이 궁금하고 기대되어 두근거린다. 기다림은 간혹 지루하거나 짜증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어쩐지 이 기다림은 결코 그렇지가 않을 것만 같다. 오히려 두근거리는 기다림이 배가 되어, 더욱더 그녀의 글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그만큼 그녀의 독특함이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