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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 박광수, 행복을 묻다
박광수 지음 / 소란(케이앤피북스) / 2013년 4월
평점 :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을 묻는 박광수 저자의 독특한 인터뷰, 민낯. 묵직한 책만큼이나 가슴을 콕콕 찔러오는 솔직담백한 인터뷰들이 가득 담겨 있다. 첫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화장과 가면으로 자신을 거짓으로 치장하게 되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진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저자의 적정한 해답이 마음에 든다. 민낯으로 매순간 진심을 내보이면 너무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할 테니, 진정으로 진실해야 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내보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 순간 나는 내게 묻고 있었다. “네가 진심을 보였던 순간은 언제였어?”라고. 그리고 있기는 했었느냐고. 그것이 씁쓸한 여운으로 가시지 않은 채, 페이지를 넘겼다.

처음 만나는 스물여덟의 이해루, 그녀부터가 독특하다. 일단 ‘화장로 기사’라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역시 편견에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놀라운 건 어려 보이는 얼굴의 그녀가 아이까지 있는 어머니라니.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들을 보며 어쩌면 나와 닮은 부분이 많구나, 싶어 더욱 몇 번씩이나 곱씹어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다던 저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어 밴드 ‘백두산’의 드러머인 서른여덟의 박찬, ‘어둠 속의 대화’ 운영자인 마흔 한 살의 송영희, 갤러리 관장인 마흔 한 살의 임지영, 몽골학 박사인 서른 한 살의 김경나, 광고회사 아트디렉터인 서른 두 살의 강평국, 캘리그라퍼인 서른 살의 김지미, 경제신문 기자인 서른 살의 신수아, 방사선사인 마흔 아홉 살의 정재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까지. 총 열 사람의 인터뷰로 가득하다. 나이와 성별, 직업까지 다른 그와 그녀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내 이야기였고, 때로는 내 친구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솔직하고 대담한, 정감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녹아 있어 때로는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화장로 기사라는 이해루,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보내는 것에 대해 곱씹던 와중에 4번째 인터뷰를 끝낸 저자의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졌다. 저자의 절친한 후배의 이야기였다. 후배 어머니는 유방암 재발로 인해 꽤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9.11 테러가 일어났던 날, 암투병을 하던 건너편 환자의 생명유지장치에서 ‘삐-’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고, 이내 사망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저자의 후배)의 손을 꼭 잡은 어머니가 남긴 말씀. ‘아들아, 안 무섭지?’ 그러고 며칠이 안 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순간 깨닫게 된 어머니의 말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그것이 힘들게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추억은 있으니 어쩌면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갤러리 관장인 그녀를 부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나’ 그리고 ‘당신’을 위한 인터뷰. 첫 질문부터 꽤나 막히는 느낌이다. ‘지금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나는 행복한가. 아닌가. 그렇다면 대체 행복은 무엇이지? 복잡하고 뒤틀린 마음으로 여러 생각을 곱씹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음이 차분히 정돈된 뒤에 이 인터뷰를 꼭 끝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완전한 ‘민낯’으로 나를 내보일 수 있을 때.
여러 사람들의 ‘민낯’을 들여다보며, 다양한 생각과 진심을 느낄 수 있어 더없이 깊이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어떻게 보면 우리네 인생은 축구경기와 비슷하다. 90분이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서 한 골을 겨우 만들어내고는 아주 잠시 행복감을 맛보고 다시 또 달려야만 하는 운동. 어떤 이는 운이 좋아서 골문 앞을 서성이다가 누군가 패스해 준 공을 슬쩍 밀어 넣는 것만으로 한 골을 기록하기도 한다. 숨이 가쁜 우리들에게 더 놀라운 것은, 그런 행운이 한 골에 그치지 않고 같은 방법으로 해트트릭을 세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많은 골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가 4골을 손쉽게 넣어서 4:0으로 이기거나, 내가 90분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온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1골을 넣어서 이기거나, 그 승리는 같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지금 지쳐서 한 발도 더는 뛸 수 없을 것 같아도, 아직 살아있다면 가슴이 터질 때까지라도 뛰어서 인생이라는 나의 축구에서 꼭 이겨야만 한다. -322~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