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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포인트의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처음 사랑을 알게 해 준 사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편지는 노래가 되어 찾아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조숙했던 그녀, 테트라. 그리고 그녀의 첫사랑 다마히코. 12살 그 어린 나이에 시작된 그녀의 첫사랑은 글 속에 투영되어 있는 그대로 아름다웠다. 어린 나이에 정착이라는 것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했던 다마히코는, 그녀가 보기에도 어른스러웠고 침착했으며 그것이 그녀에게는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같이 있는 내내 편안했고 완벽했다. 하지만 테트라의 엄마로 인해 시작된 야반도주로 인해 다마히코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마히코는 도쿄에서 군마까지 일 년 동안 열 번은 테트라를 만나러 와주었다. 그렇게 지속되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다마히코가 하와이로 가게 되면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는 깊이만큼, 두 사람의 모습도 조금씩 옛 첫사랑의 기억으로 둔갑해 갔고, 그렇게 각자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는, 우연찮게 야반도주를 떠나던 날 밤 다마히코에게 남겼던 편지가 그대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다시금 다마히코를 떠올리고 그를 찾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이야기는, 다마히코 부모님의 운명적인 이야기와 자칫 비교되며 묘사되기도 한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하와이’가 있다. 그것도 하와이의 아름다운 ‘사우스포인트’가. 사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나는 ‘하와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가보지도 않은 나라를 막연히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이상하게 좋다. 그래서 인지 TV에서 하와이에 관련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곧잘 집중해서 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는 했다. 이 책속에서도 하와이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글 속에서 다마히코가 사후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혹시 천국이 있다면 하와이와 닮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책 속의 하와이는 완벽 그 자체였다. 책을 읽는 내내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계속해서 배가됐다.
이 책을 읽자, 그의 작품인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라는 작품이 꼭 보고 싶어졌다. 이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이 앞선 작품의 후일담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여운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두 사람의 감정과, 그 깊이를 다루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하와이와 함께 어우러져 보는 내내 애틋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날, 사우스포인트에서 분명하게 그것을 보았다.
바다와 하늘, 하늘과 이 세상, 바람과 파도, 온갖 것들이 아름답게 뒤섞이고 녹아드는 그 지점에서, 나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마련해 놓은 또 다른 틈새를 보았다. 두 세계의 거대한 힘이 섞이는 것을. …필시 이 장소는 간혹 인간이 그런 신비로운 힘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정말 흔치 않은, 혹독하면서도 친절한 곳이리라. -217쪽
기대하면 하는 만큼, 슬픔도 깊어진다.
만날 때마다 하나, 또 하나 품고 있던 희망을 지워 가는 그 느낌은 얼룩처럼 마음에 남아 있었다. 더구나 무의식적으로 전기 스위치를 끄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하나 하나 불어 끄는 것처럼, 보다 의식적으로 지워 나가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은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될 뿐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