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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가니
보리스 삘냐끄 외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보리스 삘냐끄의 중편 '마호가니'와 유리 올레샤의 경장편 '질투'가 함께 들어 있다.
'마호가니'는 소련동구현대문학전집에서 읽었기 때문에 '질투'만 읽었다.
유리 올레샤는 삘냐끄 만큼이나 대가다.
'마호가니'가 보여준 모더니즘적 시험정신이 올레샤에게서도 보인다.
140쪽 가량 되는 빽빽한 글에서 작가는 단 한순간도 집념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정진한다.
어디 한 구석 상투적인 데가 없는 비유가 풍자와 상징, 은유를 모두 보여준다. 이 비유와 특이한 묘사를 읽다 보니 독서가 힘들어져 몇 번이나 중간에서 쉴 수밖에 없었지만 너무나 독특한 문장과 탁월한 작가 정신이라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삘냐끄는 소비에트 체제를 적극 비판한다는 느낌이 바로 다가오는 데 반해 올레샤는 가치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새 시대 인간형인 안드레이와 볼로쟈...이들을 질투하는 감정의 화신 이반과 까발레로프... 중간중간 선보인 환상 기법(꿈의 묘사)과 골 때리는 장광설은 스페인 작가 멘도사의 유쾌한 장광설 소설 '어느 미친 사내의 5년 만의 외출'을 떠올리게 한다.
가벼우면서도 깊이가 있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문제의식이 진지하고...이게 소련...나아가서는 러시아 소설의 특징인 것 같다.
책이 작고 가벼운 데다 약간 누렇고 거친 종이를 사용한 것도 마음에 든다. 포스트 러시아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 책을 꼭 접해보기 바란다.
--- <마호가니> - 소련동구현대문학전집에서 읽고
인텔리겐차다운 소설이라 그런지 사회상에 대한 냉소가 많이 보인다.
'장식체 문장'이라고 하는데, 소설 안에 온갖 기교와 기법을 집어넣고 음악적 운율까지 살리면서 그가 추구한 것은 한 시대상을 한 소설 안에 뭉뚱그려 놓고 그가 견지하는 역사관, 사회관을 심어놓은 것이다. 러시아 혁명 시민 전쟁 직후의 사회상을 이 짧은 중편에 통째로 집어넣고 칼질을 한 것은 참 대범해 보이면서 그 역량이 부럽다.
전통적인 플롯 위주 소설법에 반기를 든 이 소설은 무척 재밌게 읽힌다. 작가의 소설 안에 독자가 갇히는 느낌이 들지 않고 한껏 자유스러우면서도 킬킬거리며 읽을 수 있다. 작가의 지적 유희와 냉소가 역사 속 한 개인의 운명을 참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역사 속 한 개인은 한 순간 어느 사람과 싸울 때 참으로 진지하고 열정적이었겠지만 그들을 그리는 역사는 한 줄 분량의 문장일 뿐으로 코믹함으로 채색된다. 웃을 수만은 없는 사회 풍경인데 왜 이리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지.
볼세비키의 득세로 트로츠키의 몰락과 순수 공산주의자들의 퇴락, 빈농과 부농에 대한 이분법, 전혀 바뀔 생각을 않는 민중들, 권력에 달라붙는 신흥관료들... 한때 소비에트 혁명은 전세계 지식인이나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그 혁명조차도 인간 본성에 함몰된 느낌이다. 영원한 것은 '늘푸른 소나무'가 아니라 '정반합'의 변증법일 뿐이다. 모든 것은 성취되는 순간 '舊'로 전락한다. 새로운 '新'이 그에 도전하고 그 '新'도 머지않아 '舊'로 전락한다. 그럼 굳이 '新'을 들고 도전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
소비에트 혁명 초창기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