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유하는 단어들 - 혼돈과 모순의 향연 그리고 한 잔의 시
최인호 글.사진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2월
평점 :
최인호 - 부유하는 단어들
여행과 철학, 일견 잘 어울리지 않은 이 조합은 훌쩍 여행을 떠나보면 정말 잘 어울린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혼자 여행일때에 한 해서일까요. 혼자 여행을 매년 한두번은 꼭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생각을 평소보다 많이 하고 공상을 많이 하고 돌아와서인지 훌쩍 큰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철학적인 생각을 해서라기 보단 일상에선 할 수 없었던 생각의 제한을 여행에서는 자유롭게 깰 수 있었기에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고 합니다. 작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행과 철학을 테마로한 여행 에세이란 말에 오랫동안 여행을 하지 못했던 제게 여행을 회상할 기회하고 여행 계획을 짜도록 하기 위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작지만 하드커버로 동글동글한 모서리가 들고 읽기 좋은 책입니다.
처음부터 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저자 속에서 쉽게 술술 풀려 나오는 글이 아니라 속에 모으고 모았던 에너지를 함축한 언어들을 조금씩 풀어내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치 번역이 필요한 글처럼 조금씩 천천히 앞뒤를 비교하며 읽어야 조금씩 이해가 되었습니다. 책이 어렵게 느껴질때면 제 사고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 이 책도 그렇게 저를 작게 느껴지게 합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지며 글자가 작다고 느껴지던 것도, 글이 어렵던 것도 마음에서 사라집니다.
여행에선 일상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던 일들도 새롭게 보여지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세계를 여행하며 자잘한 일상의 생각들을 여행지에서 만난 자그만 사건에서 비롯해 사색을 시작합니다. 일상에서의 일이였다면 사소하게 생각하고 넘겼을 것들을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의 해프닝 혹은 관찰에서부터 시작해 깊이 생각하며 글로 기록해 내공으로 쌓고 있습니다. 그때 그때의 느낌과 교훈을 기록해 되새김한다는 것 자체가 내공이 아닐까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하나의 생각을 끈질기게 글 하나로 만들어내는 노련함이 느껴져 부러운 글이였습니다. 우리들이 하는 생각은 그리 대단치 않습니다. 그 생각을 글로 옮기며 허레허식이 들어가진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은 힘이 잔뜩 들어갔다는 느낌입니다. 여행 일상의 사소한 생각에 의미를 덧입히는 작업은 저자 자체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힘이 어떻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됨됨이가 보이겠지요. 힘이 들어갔지만 집중력 있는 글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단상들이지만 그 언어를 어떻게 쉽게 남에게 전하느냐도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려운 글이였지만 집중력이 있었고, 나도 훌쩍 홀로 떠나 나만의 생각을 이렇게 옮겨낼 수 있을까 상상해 봅니다. 생각은 며칠이고 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을 하찮지 않게 느껴지면서 남을 흡입할 수 있도록 집중력을 낼 수 있을까에선 고개가 갸웃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가서 좋은 풍경과 멋진 사람들을 만난 후에는 곧잘 우수에 젖어 생각에 빠졌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 순간의 느낌을 확 낚아채 복사해 글로 써낸다면 저자의 글을 조금은 따라할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이 책처럼 복잡하게 느껴지는 문장임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글은 어려울 거 같았습니다. 철학적일 만큼 깊은 생각은 일상에서 쉽게 일어나지도 않고 기억하기도 힘듭니다. 여행에서의 잠깐 동안의 생각을 깊이 있게 써내려간 저자가 부러웠고 이런 글을 써봐야겠다는 목표감도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