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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구도자의 시시비비 방랑기 - 과거의 습(習)에서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다
윤인모 지음 / 판미동 / 2014년 9월
평점 :
윤인모 - 까칠한 구도자의 시시비비 방랑기
청소년기에 머리를 울렸던 <티벳 사자의 서>는 지금의 제 성향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환생을 믿고 그 다음 생을 위해 현생에 충실하며 생기는 짬짬이 저는 마치 구도자라도 된 마냥 자잘한 것에 얽메이지 않는 것마냥 초탈한 경지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곤 합니다. ^^; 평소 고양이, 어린애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목표라 그런지 어리디 어려져 버린 정신연령, 현실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들에 머리 아픈 것을 가끔 에너지 낭비란 생각을 하며 현실도피에 집착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읽게 된 환상적인 티벳 고승들의 이야기, 이승에서의 이야기, 원효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스님들의 기행들은 제 혼을 빼앗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책은 구도자와 방랑이라는 제목과 함께 세련된 스님의 모습과 고양이같은 호랑이 그림에 혹해 읽게 되었습니다. 역시 현실도피 하기에 참 좋은 책이겠다 싶어 낙점! 뭔지 모를 유머가 담긴 표지가 맛깔나게 보입니다. 글자가 좀 작게 느껴지지만 줄간이 넉넉해 읽기엔 좋았습니다.
정말 구도자의 이야기입니다. ^^; 표지를 보고 무협소설마냥 장난스럽게 그리지 않았을까 기대를 가졌었는데 담백한 말투로 이런저런 구도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자는 관찰자적인 입장으로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각 이야기의 주인공 주변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신과 그 주인공과 연결된 부분을 이야기해 주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 의식하지 못했던 많은 구도자들의 모습을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다양하고 특이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저자의 삶은 얼마나 재미있고 정신없을까 하고요. 그만큼 심오하고 심각한 인생을 살고 있는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과의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은 그의 삶의 중심을 잘 잡고 있어 신기했습니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꼭 하나씩 우리에게 배울 점 하나씩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요상하고 괴팍한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소 한 가지씩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독서를 대하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각 주인공들을 대하게 됩니다. 독서도 마냥 좋은 책만 있을 수 없지만 꼭 하나씩은 감동과 가르쳐 주는 점이 있다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각 장의 주인공들이 제 상식 수준에서 상종 못할 사람도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나름의 구도 방법이 있었고 이룬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방식을 코웃음치며 볼 수 있겠지만 그들의 깨달음까지 비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 듯 구도의 방법도 다 달랐습니다. 구도의 방법이 다른 만큼 각자의 개성도 뚜렷하고 사는 방법도 제각각에 상식을 초월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겉모습에 홀려 그들의 이야기를 무시했다간 그네들이 보여 줄 수많은 교훈을 못보고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독서에 임하는 자세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구도자들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어내려는 유연한 마음을 훈련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였습니다.
평소 가끔은 고고하게 현실보다 한층 더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곤 합니다. 현실도피. 하지만 이 책에서의 구도자들의 시선은 저처럼 껍데기에 있질 않고 저 깊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눈과 마음을 트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보며 아무 생각없이 지금을 사는 제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반성하게 됩니다. 고등어 눈마냥 쾡한 눈으로 돌아다니기만 한 건 아닌지... 내 안을 얼마나 살피고 갈고 닦았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인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초반엔 소설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분들이 있었지만 구체적 실명이 나오는 분들도 있어 현실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구도자들의 삶이 허황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면 저자가 나도 그랬네 하며 거드는 말을 들으면 되려 있음직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7장으로 나뉘어 구도자의 길이 어떤지,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보여주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될까 생각하게 합니다. 책을 읽을 수록 내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던,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밀어뒀던 구도자로서의 자세가 돌아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형태를 보고 사람을 평하지 말아야겠고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침묵의 힘을 새삼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