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늦복 터졌다 -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가 함께 쓴 사람 사는 이야기
이은영 지음, 김용택 엮음, 박덕성 구술 / 푸른숲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이은영, 박덕성 - 나는 참 늦복 터졌다






  나이가 들면서 시골에서의 삶에 환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도시와 조직들에 맞지 않는 제 몸을 삐걱거리며 맞추고 있는 듯한, 내게 안 어울리는 틀에 나를 쑤셔 넣으려는 듯한 억지스런 느낌이 든 것은 오롯이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자유인이여서 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오랫동안 도시의 편함을 즐겼고 고마워 했지만 점점 이것들이 나에게 득은 아니라는 느낌과 함께 시골에 잠깐씩 내려갈 때마다 느끼는 여유로움이 오히려 제게 맞다는 느낌은 제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은퇴하신 부모님과 어떻게 하면 더 잘 어울려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표지가 아름답습니다. 마치 흰색 한복 천 위에 수를 놓은 듯 소박하면서 화려한 꽃 문양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글과 그림이 조화롭고 줄간이 넉넉하고 글씨도 큰 편이라 읽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자연의 넉넉함에서 얻은 여유로움이 사람을 이리 평화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어울림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어쩜 이리도 착하게 마음을 바꾸실 수 있었을까 서문을 보고 그 궁금증은 풀었지만 말이 쉽지 그 변화는 일순간에 이뤄지지 않았으리란 생각에 본문도 궁금해 집니다. 삐뚤삐뚤 힘주어 쓴, 한글을 깨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 글씨체로 시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가감없이 사투리 섞인 말투 그대로를 옮기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그와 관련된 며느리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쩜 이리도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고울까요. 
  글들의 형식은 자유롭습니다. 1인칭으로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며느리의 입장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마치 모든 일상을 한 번에 추억할 수 있는 책을 만들 듯한 책입니다.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며느리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갇히다 시피 한 시어머니, 시들시들 병들어 죽음을 기다리는 체념의 노인네가 글을 깨치고 며느리가 챙겨준 천과 바늘로 점점 달라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힘없이 생의 낙의 잃어버린 듯한 우리 부모님들께도 이런 반전이 생길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눈빛을 달라지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부모님이 원하는 식의 효도를 못하고 있는 제게 큰 숙제였는데 뭔가 가닥이 잡히는 거 같습니다. 
  시어머니는 매일 일기를 쓰고 천으로 뭔가를 만들고 천에 수를 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에 나온 중간 중간의 수들은 어머니의 작품인 듯 합니다. 자식들에게 필요한 소품들을 직접 만들고 자손들 앞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가족의 감탄과 칭찬을 받으며 시어머니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몸이 아파 약과 주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다 병원에서 자식들의 도움에 의존하며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은 건강한 젊은 사람의 마음도 병들게 합니다. 시어머니도 늙어 온 병에 병원에 가게 되고 시들시들해 지는 모습에 며느리는 천과 바늘을 가져다 드립니다. 살짝 뭔가를 전해드렸을 뿐인데 시어머니는 자신의 손을 놀리며 자신이 세상에 아직도 쓸모있다는 점을 슬슬 깨닫기 시작하는 듯 합니다. 그 어른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아프지 않을 때 만큼은 눈빛이 달라지고 생기가 넘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늙은 이에게는 관계만큼 중요한 게 없는 거 같습니다. 돈도 행복도 좋은 관계가 없다면 그는 늙어 죽어가는 사람일 뿐이지 않을까요. 시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주력한 아름다운 며느리의 모습에 아직까지 어른들에게 투정부리고 내 방식만 고집하는 제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