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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 34살 영국 여성, 59일의 남극 일기
펠리시티 애스턴 지음, 하윤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펠레시티 에스턴 - 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누군가 홀로 여행을 했고 그 기록이 남겨졌다면 호기심을 갖고 읽게 됩니다. 여성이 남극을 그것도 혼자 종횡했다는 책의 테마를 알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표지에는 끝없는 눈밭위에 홀로 많은 짐을 끌며 가는 뒷모습이 보여 쓸쓸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전해줍니다. 책은 보통 크기보다 작은 편이며 작고 통통하고 단단한 편입니다.
여행을 통해 극기를 체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 마음이 정한 한계가 제 한계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여행길에서 내가 정한 한계 뿐 아니라 널뛰는 감정마저 이겨내었다는 걸 깨달았을때 얼마나 기쁘던지요. 막연히 남극을 모르고 저자의 여행도 그런 것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엄청난 오해였습니다. 남극은 빠지면 영영 벗어날 수 없는 크래비스, 밤과 낮이 구별되지 않는 계절이 있고 극심한 추위는 박테리아도 섬멸될 정도라 단체 종주에서도 정신 착란이 일어날 수 있는 척박한 극한의 환경이라 합니다. 막연히 너무 추운 곳이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책을 보며 제가 간접으로 겪은 남극에 관련된 것들이 속속 떠오릅니다. 영화 <남극의 셰프>, 영화 <남극 일기>, 그리고 북극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들. 모두 영상으로 만들어져 있어 책을 읽을 수록 영상으로 본 눈발과 계속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의 적막함, 그리고 광활한 공간에서의 고립감이 더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그런 환경에 내려져 혼자가 되었을 때 느꼈을 먹먹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중 몇 명이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해 본 적이 있을까요. 반경 몇백 킬로미터에 아무도 없는, 문명의 손이 뻗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공간에서 오롯이 나 혼자라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조금씩 이해가 가는 듯 했지만 저자가 자세히 전하려 했던 느낌들을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소한의 이동 수단으로 가져간 스키, 얇지만 추운 바람을 막아 아늑한 휴식공간을 막아줄 텐트,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신수단 위성 전화 이런 문명의 이기들이 남극의 말도 안되는 바람 앞에선 짐덩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것에도 의지할 수 없고 오직 자신만 믿어야 되는 오롯한 순간. 해가 지지 않는 남극의 여름에 태양을 친구처럼 의지했던 저자의 모습이 착란과 정상의 사이를 왔다갔다 했을 저자의 상태를 섬칫하게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 위해 남극에 갔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2달 동안 남극을 횡단한 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안에 새로이 생긴 차분하지만 단호한 평정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매일 저자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지평선을 수백만장 찍었다지만 매일의 일과를 적으며 사진도 공유했다면 더 실감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글로 읽는 매일의 극한의 도전은 선뜻 실감이 나질 않았거든요. 저자가 여행을 가기 전 여동생에게서 받은 소포가 참 인상적이였습니다. 언제나 함께함을 잊지말라는 말과 함께 소켓에 가족 사진과 여동생과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죠. 우리는 어딜 가든 외롭고 고독한 존재입니다. 남극이든 사람많은 도시에든, 사람이 드문 시골이든 어디에서든지 평등한 조건입니다. 사랑, 우정, 형제애 이런 사회적인 감정들에 호사스럽게도 가끔 질리곤 합니다. 가끔 극한으로 나를 몰아넣어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과 함께 우리라는 개념을 다시 재정의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물론 저자처럼 역사적으로 최초의 여성 남극 종주 기록자가 되지 않아도 극한의 도전은 끝없이 많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