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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11월
평점 :
마광수 -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얼마전 <육체의 민주화>라는 책을 읽고 마광수 교수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저자의 책을 읽어본 건 그것이
처음으로 ^^; 막연히 남들의 말과 글만 보고 들어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요. 야한 책을 쓰고 돌아이같은 짓을 저지르는 이상한
지식인으로만 생각하던 분의 말투에 쏙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지식인이라면 덕목처럼 생각하는 잘난 척, 아는 척, 성인군자인 척
하는 것들이 없고 저와 스타일이 비슷해 속이 시원했습니다. 그런 그의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쓴 듯한 어투는 이론과 선입견에 꽉
묶여 삐걱거리며 읽었던 책들과는 달리 꽤 관념적인 면도 있음에도 속독이 가능할 정도로 잘 읽히는 책을 쓰시더군요. 유명한 소설을
이런 마광수 교수의 시선에서 본다면 어떨까 궁금해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 소개에도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으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표지는 저자의 그림으로 살색이 보이지만 수묵화와 잘 어울리는 글로 멋지게 장식하며 저자만이 낼 수 있는 해학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보는 시각, 분야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해설서와 에세이 류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쉽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인지라 그
런 책들을 즐겨 읽는데요. 그 중에서도 고전 문학은 어릴 때 읽은 것들을 빼고는 다시 옛것을 찾아 읽는 것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아 오히려 해설서를 보는 것이 제게는 잘 맞았습니다. 고루한 도덕군자도 아니면서 괜히 감상에 젖어 시각을 흐트리지 않을 투명한
지식인이라 생각하는 마광수 교수라는 렌즈로 보는 고전 문학이 궁금했습니다. <육체의 민주화>를 읽기 전에는 마광수
교수를 광인처럼만 여겼고 책을 읽고 나서야 얼마나 과대 평가되었으며 과소 평가 되었는지를 알겠더군요. 물론 광인으로 몰린 그
과정을 제가 알질 못하니 교수님을 다 이해한 건 아니겠지만 제가 보는 시점에서 봤을 때에는 해맑고 순수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투명하게 글에 투영해 내는 맑은 영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렌즈로 보는데다 게다가 32편이나!
서시에서부터 공격적입니다. ^^ '우리나라 문학 교육은 엉터리'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회를 부정하며 시작하니 삐뚤어진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분이라면 이것만 읽고도 외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도 동의하는 바 싱긋 웃으며 읽게 됩니다. ^^
여러 고전을 읽으며 패턴을 알아갈 수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위 야한 소설로 알고 있던 소설들에 숨겨져 보지 못했던
의미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터부, 교육으로 더 견고하게 머리에 각인된 도덕 규범들. 이런 저런 것들이 마치
눈동자 앞에 꺼풀이라도 씌여 있었던 것처럼 야한 것을 보면 야한 것만 보고 거부감이 들거나 좋아하며 감각적으로 느꼈을 뿐, 그
뒤편의 의미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속이 시원했습니다. 물론 오랜 고정 관념에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어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아주 미미할 뿐. ^^ 페미니스트인 제 입장에서 여성은 근본적으로 마조히스트적이라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
우리나라는 도덕이라는 관념에 젖어 딱딱히 굳어져 버린 듯. 저자는 성, 연애의 자극에 압도되지 않고 그 이면의 의미를 탐색하는
자세를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읽는 내내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지... 성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만 집중했을 뿐 그
이면을 볼 수 있는 여유는 제게 없었나 봅니다. 이런 것들을 볼 줄 모르고 비판하는 가식적인 지성인들을 시니컬하게 들춰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에서 보는 작품의 의미, 심리학적이고 역사적인 배경과 맞춰 보면 이렇게 심오한 내용이였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제가 한 독서는 작품의 표면만 읽어냈을 뿐, 2중, 3중으로 숨겨진 그 안의 의미를 벗겨 읽는 능력이 아직
없었던 거 같습니다. 안데르센 동화의 위대함은 요즘 우리 작가들처럼 쓰려는 교훈을 표면에 내놓지 않은 우아함이 오래도록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삼국지>의 교훈적이고 유교적인 꺼풀에 쌓인 주인공들보다 <수호전>의 주인공들의 흡입력이 높은 것은 그들이 대의명분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도 죽이고 살리며 자유자적한 행위들에 있다고 분석합니다.
유쾌한 책입니다. 지성인의 가식이 없어 상쾌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감히 용기있게 나서서 하지 못하는 사회와 문화 교육과 현대의
작품들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며 미안하면서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가 갇힌 관념의 세계를 한번에 꿰어 내어 왜
잘못되었는지 차분히 반복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60이 넘어 패기가 빠진 저자의 우아한 말투가 자꾸 마음을 아립니다. 좀 더 힘있게
말해주셔도 될텐데... 우리 사회가 그의 똘기로도 눈을 뜨지 못하니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우아해지시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저자의 말대로 저자도 안데르센의 방법을 쓰는 것일 수도. ^^ 재미있는 작품들과 그에 대한 해석을 즐기며, 문학
작품은 어떻게 써야 되고 평가되어야 되는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정치, 경제는 교육을 통제하고 그에 천편일률적으로 찍혀지듯 교육받은 우리들의 생각은 과거 중국의 전족마냥 기형적으로 좁고 낮게 천천히 만들어진 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