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
문성원 지음 / 알렙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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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원 -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중학교시절 뭣 모를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조금 쌩뚱맞지만 저를 니체로 이끌었고 이 두 작품을 읽고 독일책이든 철학은 읽지 말아야지 결심했더랬어요. ㅠㅠ 번역자가 인문학적인 소양이 적고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에 쫓기면 조잡한 번역이 나온다는 건 어린 제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고, 커서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잘 된 번역을 가려내기가 귀찮아져서 잘못 접어든 철학으로의 길은 철학을 고고하고 어렵고 상아탑의 학문으로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강신주 철학박사의 강연을 들고 느낀 점이 많아 철학에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던 중 강신주 박사의 선배이신 듯한 저자가 쓴 작품에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습니다. 구보씨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였고 누군가가 세상의 자잘하게 꿰어진 패턴과 질서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더군요. 표지는 간략하지만 생각하게 하는 디자인으로 쓸쓸한 가을 남자의 뒷모습과 간략한 제목으로 미니멈합니다. 책도 작고 귀엽고 가벼워 휴대성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저자가 만들어낸 구보씨의 의식을 따라 같이 부유하면서 내 생각들을 끄집어 내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구보씨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이란 함성호님의 책이 떠오릅니다. 인문학 초보인 제게는 많은 저자들의 글이 신선하고 깊이감이 있게 느껴졌지만 함성호님의 글은 조금 더 독특하게 제게 각인된 편입니다. 남자답지? 않게 섬세하고 세심한 스토리라인과 내면작업을 충분히 거친 쉬운 말투가 너무 좋았습니다. 큰 이론을 만들고 그에 대한 자기의 주장을 펼치는 글들은 흔하고 흔합니다. 그에 반해 구보와 함성호님은 작은 데에서 소소하게 시작하지만 큰 이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독자들도 동반하도록 합니다.

함석호님의 글의 장점은 소소한 일상을 절제된 말투로 말하지만 독자가 소소한 것에서 큰 철학까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구보씨의 단점은 너무 친절해서 독자들을 간단한 것에서부터 끝까지 얽어매어 끈적하게 속삭여 독자를 바보처럼 느끼게 한다는 점이였습니다. 물론 그 선의에 감동받지만 넘쳐나는 인문학책들 사이에서 완급조절이 잘못되어 좋은 내용이 지겹게 왜곡되지 않을까 안타깝습니다.

강신주 박사는 철학이란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을 뒤엎어 왜 그럴까로 시작해 작업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옷을 입고 말하고 살아가는 주위의 소소한 것들부터 왜 그럴까로 다 뒤엎어 버립니다. 머릿속에서의 혁명이랄까요. 이건 이런거란다 라는 어른들의 말대로 네, 알겠습니다 라며 그대로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우리의 모든 것들의 의미를 재정의합니다. 그 재정의 과정은 느립니다. 우리가 얼마나 관념과 습성에 사로잡혀 있었던지 선입견을 깨고 나만의 생각을 재정립하는 과정은 내 생각들을 땅을 깊이 파고 다 묻어버린 후 새로 탑의 돌들을 하나 하나 쌓 듯이 나만의 철학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쌓아나갑니다.

아주 재치있는 사람이라도 혼자만의 생각들을 주구장창 늘어 놓는다면 참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보씨는 Y라는 여성과 함께 대화하고 반박하며 설득합니다. Y는 구보씨의 '아니마'인 여성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들은 꿈에 관한 강연인 고혜경 님의 강연에서 '아니마, 아니무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남성와 여성의 내부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존재한다는 융의 이론을 발전시킨 강연 내용으로 내가 여성이라면 내부에 남성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와 조화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였습니다. 구보씨와 Y의 대화는 철학자로서 철학적인 면만 주구장창 깊이 판다고 성숙한 생각을 얻어낼 수 없다는 듯 보여집니다. 관념적인 세상에 푹 빠져있는 철학자 구보씨와 현재를 살고 있고 더 세속적인 듯한 여성성인 Y와의 조화를 통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성숙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보씨의 지인들이 구보씨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사색과 정진에 도움을 줍니다. 진지한 그들의 대화를 보다 보니 철학적이고 내면적인 주제들을 이렇게 쉽게 대화한 적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구보씨는 외롭지 않아 보입니다.

재미있고 깊이 있는 생각을 위한 장치로 다양한 영화, 책, 그리고 에피소드들이 다양하게 쓰여 있어 지겹지 않게 이야기에 양념을 치고 있습니다. 그 작품들이 잘 알려지고 좋아하는 작품들일 때에는 감정이입이 훅 되는 경험을 합니다. 처음 들어본 오래된 작품이거나 어려워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작품들이 꽤 많이 소개되어져 새로운 작품들을 알게 되어 좋기도 하지만 관념적으로 세심한 결을 만들어내는 구보씨의 말이 익숙하지 않기도 합니다. 관념에 갖히지 않아 관념적인 느낌들의 정의에서부터 축구, 동물, 누드 등의 구체적인 현상들까지 관념과 현실을 오가며 생각들을 정리해 줍니다. 구보씨의 의식을 따라가며 아주 긴밀하게 느껴지지만 익숙치 않은 스토리텔링과 마치 프랑스 소설을 읽는 듯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문체에 구보씨에 나를 투영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삶에 끌려다니지 않고 생각한 대로 살 수 있도록 구보씨는 독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철학이론에서 내려온 것들이 아니라 땅에서 출발해 철학으로 발전하는 나무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그 과정이 어렵고 지치고 힘들었지만 뼈가 되고 살이 되리라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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