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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은 없다 - 부속인간의 삶을 그린 노동 르포르타주 ㅣ 실천과 사람들 5
레그 테리오 지음, 박광호 옮김 / 실천문학사 / 2013년 8월
평점 :
레그 테리오 - 노동계급은 없다
민주주의, 자본주의에 별 다른 반감없이 30여년을 살아왔지만 요즘 뭔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은 어린 제게는 그대로 스펀지처럼 흡수되어 세뇌에 가깝도록 자연스럽게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했던 거 같습니다. 철학,
인문학을 읽고 민주주의를 항상 옳다고 생각했더니 이상한 선거와 이상한 사람들의 힘만이 권위를 갖는 사회에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요.
얼마전인문학 강연을 듣고 나는 과연 자본주의에서 행복한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 이 책을 만나 읽게 되었습니다.
표지는 위 사진의 것처럼 빨갛지 않고 우아한 버건디 색으로 땅의 색, 나무의 색과 닮아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꽤 두껍지만 꽤
가벼워 휴대성이 좋고 그립감이 좋았습니다.
노동자들의 근 80여년간의 역사를 보며 우리가 불행하게 살면서 행복을 꿈꾸는 자본주의의 패턴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전반적으로 구수하고 담백한 땅의 기운이 느껴져 편안하고 안정적인 이야기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계가 들어오며 인간의 노동력이
경시되고 착취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저자 자신이 겪은 일을 기술함으로서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비현실성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점점 줄어드는 경이로운 경험을 합니다. 저자의 스스럼없는 담담한 이야기에 감정
이입이 되고 독자는 약자의 편이 되면서 감정의 굴곡을 겪습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듣듯 편하게 읽다가 너무
디테일한 부분은 하품을 하며 슬슬 넘기기도 하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기계없이도 잘 돌아갔었구나 새삼스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기계없으면 생산적이지 못하고 위생을 걱정해야 되고 뭔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온전히
사람의 몸 만으로 각양각색의 화물을 선박에서 하역했던 과거의 일들이 놀랍습니다. 얼마나 경이롭고 숭고한지. 손끝으로 작동시키면
빠른 시간에 뭐든 하는 기계는 노동의 고귀함을 가르쳐주지 못하지만 직접 땀흘려 하역했던 작업들을 읽으니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사람이 편하자고 기계를 들여놨지만 일 할 자리를 잃고 존엄성을 잃은 건 아닐까요. 아직 <자본론>을 읽지 못해서 이런
감상에 빠지는 건 아닐까, 자본주의의 편에 선 <자본론>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은 정치를
하는 동물이라고도 하지요. 육체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연합해 세력을 만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30여년 육체노동자로
노조와 함께 하며 그 투쟁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 노조의 정당성을 자연스레 보여줍니다. 크게 힘주어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내용을 세세히 들려주어 화이트칼라가 절대 다수인 우리 세대의 가슴을 울립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건비 싼 노동력에 밀리고 기계에게 밀려나고 나이 들어 쫓겨나는. 노조의 거센 자기 주장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 세대는 신장된 권리를 가질 수 있었음을 느끼게 해주며 더 크게 노조의 힘을 정치적으로 키워 우리 목소리를
내어야 된다고 부드럽게 권유하고 있습니다.
낯선 미국의 유명인들 이름과 그들의 치적, 그리고 자잘한 노조내의
문제들과 생리, 습성들이 크게 재미있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 한국의 독자인 제 입장에선 없어도 될 이야기 같지만 미국인인
저자의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것이겠지요.
정치적인 색깔이 띄어 어느 정도 씁쓸함을 느낄 독자들도 있겠습니다. 제목과 소제목, 그리고 표지까지 정치적이란 생각이 들어 한정된
독자들에게 읽힐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면을 써서 더 몽글하게 표지를 장식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애두르게
우회해 얘기하는 정치적이고 관념적인 글이 아니라 좋았고 아날로그적이였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