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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때 잠자리
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 열림원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마르탱 파주 - 여덟 살 때 잠자리
표지가 독특해 눈이 가는 책입니다. 책 표지에 끌리고 제목에 끌리고 줄거리를 보다 보니 꼭 읽고 싶어 지는 책. ^^ 사람을
매혹하는 힘이 있습니다. 프랑스 소설은 항상 제게는 도전같아요. 번역의 문제인지 어째서인지 프랑스 소설은 문장이 복잡해 난독증이
있는 제게는 힘겨운 편인데요. 천재성을 보이는 여류 화가가 주인공이라 흥미로워 왠지 함축성 높은 프랑스 소설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을까 기대되는 책이였습니다. 책은 세로 길이가 짧은 편이라 귀여운 느낌의 책으로 두께가 있지만 작고 그립감이 좋아 휴대성이
좋았습니다.
상콤하고 귀엽고 발랄하고
재미있었던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를 떠오르게 하는 귀여운 소설입니다. 현재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과거 이야기로 돌아가는
독특한 스토리텔링 기법, 그리고 과거가 나를 상처입힐 수 없다는 듯 몽글콩글 귀엽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끔찍한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감성과 방식이 비슷합니다. <아멜리에>의 스토리텔링처럼 남자 나레이터 아니지 작가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주인공이 여성이다 보니 전지적 작가의 성별이 헷갈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읽는 유쾌한 풍자극에 무릎을
치고 실소하게 합니다. <아멜리에>를 떠올리자 마자 책이 친숙해졌고 복잡한 문장과 의식세계가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이야기 전개와 독특한 캐릭터들의 조합으로 점점 더 책에 빠져들게 됩니다.
특유의 비꼬는 문체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폭소가 아니라 잔잔하게 웃으며 읽을 수 있고 계층간의 문화 격차로 생기는 오해와 착각이 재미있어
어이없이 큰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잔잔한 웃음으로 끊임없이 읽어 나가는 자잘한 재미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합니다. 저처럼
하루에 여러 권의 책을 읽어야 만족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독같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나만 바라 보라는 독점욕이 강한 책입니다.
^^
선택과 집중으로 쓸데없이 돈 많은 부자들에게 막연한 협박성 메시지를 적은 편지를 보내 그 돈으로 살아가는
여주인공 피오. 돈을 지정된 장소에 가져오는 피해자들을 그리며 그림에 빠져들어간 그녀는 피해자 중 한명에게 반대로 협박당해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갖다 주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피해자가 유명한 예술애호가로서 까다로운 안목과 감각으로 유명했고 그가 갑작스레
죽자 그녀의 그림과 그녀의 존재가 예술계에 화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처음엔 우연히 시작된 그녀의 성공이 계속되길
기대했지만 점점 허공에 뜨는 그녀의 유명세를 보니 걱정이 앞서더군요. 그만큼 감정이입이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해리포터>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오가며 들려주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독자는 주인공처럼 느껴지기 보다는 그녀가
옳으며 잘 되었으면 좋겠고 응원하는 입장이 되면서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작품입니다. 등장 인물들의 마음, 가치관, 예술관, 그리고
처세술을 보면서 독자들은 화려한 겉모습속에 숨겨진 어두운 인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만으로도 충분했던
자신의 세상에 만족하던 피오가 너무도 크고 화려하면서 공허한 연예계같은 예술계에 데뷔하는 과정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깊은 암울한 인간의 바닥을 읽어도 풍자적인 상황과 함께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독자들은 안전하게 그 내용들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내가 속한 세계가 아니기에 소설에서 날카롭게 그리는 현실에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연예계처럼 유명세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곳에서는 상처로 남을 수도 전략적으로 신인들의 말랑한 멘탈에 도움을 주는 교육 자료로 사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 피오의 미소는 씁쓸하지만 현실적입니다.
속이 시원한 책입니다. 내숭없이 풍자로 현실을 그리고 현실뒤에 감춰졌던 진실들을 현란하게 까발리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있었음직한
일들이고 비슷한 경우를 우리는 연예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적이 많겠지요. 너무도 할 말이 많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야
잘하는 것일지 모르게 만드는 책입니다. 너무 복잡하고 상처를 주는 현실에 우리 현대인들은 주인공 피오처럼 자신만의 세계에서 환상을
꿈꾸는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 관계에 얽히고 얽혀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를 세상에 내던져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요. 사랑받길 바라지 말라던 인문학자의 작게만 느껴지던 말이 소설을 읽고 나니 천둥소리처럼 크게 귓가를 아프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