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레이철 조이스 -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병든 옛 친구의 엽서를 받고 아무 생각없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걷기 시작하는 이야기의 흐름이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소설입니다. 평소 걷는 것을 힐링법 중 하나로 쓰고 있는 제게는 계획없이 떠난 걷기 여행은 상상을 부추기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소재인데요. 거창하게 순례라는 제목이 붙은 걸 보니 단순하게 무념무상의 걷기가 아니였던가 봅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에 표지는 마치 그가 걸은 먼 거리를 축소해 놓은 듯한 산등성이와 언덕위를 걷는 지팡이를 든 남자의 그림자와 엽서로 장식되어져 있습니다. 책은 두꺼운 편이며 꽤 묵직했습니다.

 

 

 

 

  <해리포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포레스트 검프>를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 작품입니다. 위축되고 평범하고 나른한 일상을 그린 초반은 <해리포터>를, 무작정 길을 나서 걷게 되는 모험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편지를 받고 아픈 친구를 방문하려 걸으며 회상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포레스트 검프>를 떠오르게 합니다. 모두 제가 영감을 많이 받은 작품들이라서 그런 걸까요. 이렇게 공통되는 분모도 많습니다만 스토리텔링 방식이 <포레스트 검프>와 약간 유사하긴 합니다만 참 독특한 거 같아요. 불규칙적인 주인공의 기억과 느낌들이 속도감있고 맛깔스러워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라디오 드라마로 쓰여진 작품으로 저자는 50대 여성(!)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남자일 것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란 느낌으로 읽어왔거든요. 주인공은 해럴드 프라이로 은퇴한지 6개월된 노인으로 조용한 마을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다가 몇십 년 만에 옛 친구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부치러 나갔다가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 잠깐 답장을 우체통에 넣기 위해 걷는 그 시간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오르고 자신의 답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느끼고는 다음 우체통이 나오면 부치기로 하고 계속 걷게 됩니다. 우연히 들른 주유소에서 일하는 소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옛친구에게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 너를 만나러 갈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전화와 편지를 보내고 길을 나서게 됩니다.  

  첫 전개부터 흥미진진했고 중간 중간의 대화들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 찾아가는 친구가 여성이여서 흥미진진했고 여성으로서가 아닌 다른 의미의 중요한 사람이였음이 밝혀지는 것도 좋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여유롭게 지나가는 사람, 식당의 옆테이블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 등이 독특했구요 ^^;. 은퇴한 그리 늙지 않은 노인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나온 길에서 겪게 되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참 공감되었어요. 내가 왜 떠나와야 됐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그 장면에서의 껄끄러움이란, 마치 제가 하고 일인 양 낯뜨겁고 어쩔 줄 모르는 당혹감과 수치와 약간의 통쾌함까지. 자잘한 심리 묘사에 깊이 공감되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는 순리에 따르는 100세 노인의 초연함에 솔깃했었지만, 그러고 보니 삐걱이는 관절과 통증과 자잘한 고뇌까지 서술된 이 책이 오히려 현실감을 띄는 거 같았어요. 마지막 걷기 동료로 남았던 개가 버스에 타며 떠나는 모습도 허탈하면서 그마저도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해럴드와 동행하며 공감도 되고 너무 찌질한 그가 마치 숨겨진 내 모습같아 참 밉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아내 모린이 찾아와 만날 때는 절로 눈물이 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은퇴한 사람의 쓸쓸한 가정의 모습을 보니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이렇게 쓸쓸하고 스산한 모습에 쉽게 감정이입이 된 적이 없어서 자세히 읽어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저희 부모님도 은퇴하신 분들... ㅠㅠ 우리 부모님도 쓸쓸하고 자신을 보잘 것 없다 느끼실까, 과거를 되돌아보고 뭔가를 바꾸기 위해 모험을 떠나고 싶으시진 않을까 생각이 많아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