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은빛 눈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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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사방 불쾌한 것투성이인 이 계절로부터, 영원히. (p. 9)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취업시장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지만 아직 한 군데도 마땅히 합격한 곳이 없던 호리카와는 한 편의점에서 학부 교양세미나 수업을 같이 듣던 기요타와 재회하게 된다.

오랜만에 나눈 서로의 안부에서 기요타는 어필리에이터니 가상화폐니 하는 단어들을 꺼내며 단박에 자신이 다단계 일을 하고있음을 드러냈다. “일본에서는 이런 비즈니스를 보는 시선들이 안 좋긴 하지. 근데 미국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비즈니스 전략이거든.”이라는 말과 함께.

기요타는 호리카와에게 알바를 제안하며 자신이 하는 일을 옆에서 보조해줄 것을 부탁했고, 호리카와는 결국 그 일을 받아들이게 된다.

◇ 내 고독이 주변의 어둠 속으로 녹아드는 기분에 묘하게 마음이 진정됐다. (p. 27)

허나 호리카와의 마음은 점점 더 심란해져갔다. 눈 앞에서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동조하고 있다는 죄책감, 허황된 말에 넘어가는 듯 보이는 순진한 사람도 어쨌든 자신과 달리 취직을 했다는 자괴감을 느껴가며 말이다.

그러던 중 기요타와 재회했던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생의 존재감은 더 커져갔다. 어눌한 일본어 발음으로 근처 일본어학교에 다니는 유학생일거라 짐작했던 그녀는 사실 메이토대학 대학원에서 지진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이었다.

호리카와는 그녀가 잃어버린 논문을 찾아주며 그녀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좀 더 포용하게 된다.

◇ 반대로 묻고 싶어요. 다들, 왜 자기들이 사는 별의 내부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지. 안쪽이 어떻게 되어 있나 궁금하지 않는지. 표면만 보고 있어봤자 아무것도 모르는데. (p. 46)

◇ 나도 귀를 기울여보자. 말은 잘 못해도 귀는 기울이고 있자. 그 사람의 깊은 안쪽에서 뭔가가 조용히 내리며 쌓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p. 71)

어느샌가 지겨웠던 한 계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직업, 나이, 성별 등 살아가며 누구나 겪을만한 삶의 고뇌에 놓인 사람들에게 잔잔한 해소의 방향을 가리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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