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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2013년 4월에 나온 신간인 이 책을 두 군데 매체에서 소개받았다. 하나는 <시사인> 책소개 코너였고, 또 하나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였다. 양쪽에서 모두 "작가의 말"을 인용하였는데,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소설을 다 읽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읽을 때도 웃음짓게 만드는 글이었다.
꼭 5년 전 이맘때, 다작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낯선 광주 땅으로 내려왔는데...... 이런 그만 다산을 하고 말았다. 이 무슨 봄날 개나리 꽃망울 같은 일인가, 생각하는 와중에도 고만고만한 아이 세 명이 양쪽 다리와 허리에 매달린 채 활짝 입을 벌리고 있다. 이 무슨 '복사씨와 살구씨' 같은 일이란 말인가. (p402 작가의 말 중에서)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팝아트에 등장하는 만화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흥미로운 표지를 넘겨 소설의 인물들을 하나씩 만나보았다. 대개 무언가 잘 안풀리거나 허둥지둥하면서 발을 헛디디고마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어떤 때는 "아..." 하는 탄식이 나오게 하기도 하였다(책을 읽고 나서 나 역시 화장실의 두루마리 휴지를 보면 섬찟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대개는 유머러스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졌다.
읽는 동안 무한한 이야기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기분이었다. 작가는 솜씨좋은 이야기꾼처럼 그 다음을 궁금하게 애태우면서 한 장면 한 장면 풀어놓았다. 그래서 긴장감과 흥미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가게 되었다. 단편이라는 길이의 한계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삼촌의 프라이드가 등장하는 "밀수록 가까워지는"과 작가 자신의 모습이 형상화된 듯한 교수가 등장하는 "탄원의 문장"이란 소설이 가장 길게 여운이 남았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소설집 중 손에 꼽힐 책으로 남게 될 것 같다.
p85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속에 한 가지씩 여백을 두고, 그 여백을 채우려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법인데, 그게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자리인데, 그때의 나는 그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p176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예상 때문에 그 예상과는 다른 일들이 더 크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이 소설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라면, 차근차근 플롯을 뒤집어보면서 빗나간 예상들을 이해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의 우리는 언제나 허둥거리다가 자신이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도 모른 채 또 다른 예상 속으로 빠져버리기 일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