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오버
톰 페로타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문뜩 죽음 그 너머를 상상해본다. 지금 죽음을 상상하고 있는 내가 죽는다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면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잔떨림이 일 정도로, 소름이 돋아서 이불을 턱 끝까지 당겨 올렸더랬다.

누군가가 그랬다. 상상력이 풍부할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가 크다고.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종종 들리면 베르테르 효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음 그 너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년 이맘때쯤은 아마 온 국민이 죽음 그 너머에 대해 생각하고 아파하지 않았을까?

톰 페로타의 『레프트오버』의 소개글에서 제일 끌린 건 미국 HBO TV드라마의 원작이라는 점이었다. 이 소설을 읽게 된 제작자가 바로 제작을 결정할 정도로 빠져든다고 하니 킬링타임용으로 괜찮겠다 싶었다. 구두가 놓여 있고 그 위로 흩어지는 연기… 의미심장한 표지도 눈에 들어왔다.

『레프트오버』는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진 사람들, 3년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뭉뚱그릴 수 있다. 챕터마다 중심 캐릭터가 달라진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이런 구성은 미드 마니아에게는 참으로 익숙하다). 여러 유형의 남겨진 사람이 나오는데, 어쩌면 그렇게 인간의 심리를 톡톡 건드리는지….

그중 십대소녀 ‘질’이 기억에 남는다. 그날 질은 친구 젠과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젠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함께 있던 질을 위로한다. 얼마나 상심이 크겠냐고. 질은 딱히 젠과 친했던 것도 아니어서 사람들의 위로에 냉소적이다. 오히려 사라진 젠은 미화되어 남겨진 이들의 뇌리에 있고, 남겨진 자신은 사람들 관심 밖에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등 일탈을 일삼아도 꾸짖는 이 하나 없다. 어느 날 젠은 수업이 시작한 교실에 들어가지 않은 채 밖에서 자신의 자리를 쳐다본다. 소설에 나온 젠의 심리는 이렇다.

“질은 자신이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줄에 놓인 빈 책상 하나만이 그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소녀의 존재를 기리는 유일한 유품이 되어버린 듯했다.” (75쪽)

타인과의 연결고리는 ‘나는 지금 여기 있다’라는 어필일지도 모른다. 질 외에 다른 남겨진 자들도 사라진 자들과의 사연을 풀어낸다. 인간의 악랄한 면, 추악한 면을 내보이기도 한다. 공통적인 건 모두 ‘나’ 중심이라는 것이다. ‘애도’보다는 남겨져서 오는 변화에의 적응에 힘겨워한다. 질이 느꼈던 감정,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사라진 것 같다’라는 건 현실의 나도 어느 날 갑자기 느꼈던 감정이다. 그래서 질에게 공감했나 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니까’라는 전제조건 다음에 어떤 말이 나와야 어울릴까? ‘지금을 열심히 살자’ 정도 일까? 뭐, 때로는 충동구매가 나오기도 하겠지. 이렇게 적고 보니 ‘머리 아픈 책 아냐?’라고 크나큰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전혀. 심리 묘사에 감탄하다가 어느 순간 마지막에 ‘펑’ 하고 해갈을 느낄 수 있다. 가볍게 읽으면서 또 가볍게 사유할 수 있다. 『레프트오버』를 읽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동안 나는 지금 여기 있음을 실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