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평의회 / 기사와 죽음
레오나르도 샤샤 지음, 주효숙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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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내 남편이 특히 걱정해요. <시칠리아 평의회>에 뭔가 우리 봉토와 관련된 게 있다고, 정확하게 뭔지는 나는 몰라요. 그런데 남편은 <이집트 평의회>에도 또 다른 새로운 내용이 적혀 있을까 봐 걱정하더군요."
"새로운 소식이라, 이를테면 그 봉토가 왕의 것이었다는, 그리고 당신 남편이 그 땅을 옛날에 강탈한 거라는 소식 말이군요."
"바로 그런 거라고 여겨져요. 내 남편이 그걸 걱정하는 것 같아요. 당신이 그래요, 벨라에게 한마디 할 수 없을까요. 좀 알려달라고?"

그는 나폴리에서 불어오는 총독의 광기 어린 바람에 더불어, <이집트 평의회>와 그것을 번역하는 교활한 남자가 드러내는 위험을 팔레르모의 귀족들 중 첫 번째로 경고받는 것으로 여겼다. 사실상 다른 많은 이들은 돈 주세페의 집이 구유를 찾는 동방박사처럼 찾아가야 할 곳임을 벌써 알아차렸다. 그의 집 채마밭에는 양들이 뛰어다니고, 커다란 닭장은 닭이 몸을 돌릴 수도 없을 정도로 꽉 찼다. 온갖 치즈와 케이크가 집 안 구석구석 쌓였다. 선물이나 사방에서 몰려드는 정찬 초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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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
주디스 화이트 지음, 이나경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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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나가 씩씩하게 들어서며 노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면, 모두 자기 이름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슈트케이스의 손잡이에 붙은 이름표이자, 자신의 정체였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상기되는 것이 반가웠다. 그들이 아기 때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속삭이는 연인으로부터, 적으로부터, 출석을 부를 때, 항상 들었던 이름이고, 이 이름이 그들의 발가락에 꼬리표로 붙을 것이다. 자녀들만이 그 이름을 쓰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들은 모두 엄마, 어머니, 아빠, 아버지였지만 그 역시 그 어떤 이름보다 그들을 정의해주는 말이었다. 그들의 지위,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일하고 영원한 관계를 정의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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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션 일레븐 스토리콜렉터 45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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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재앙이 시작되던 날 아서 리앤더는 연극 <리어 왕> 공연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와 짧고 긴 인연을 가진 사람들의 과거와 재앙 이후의 여정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제목인 <스테이션 일레븐>은 아서의 첫 부인 그린 그래픽 노블 <닥터 일레븐>에 등장하는 행성형 우주정거장의 이름이다. 주인공 중 한명인 커스틴은 <리어 왕> 공연에 아역배우로서 아서와 함께 하는데, 아서가 죽던 날 아서로부터 <닥터 일레븐>을 선물받고, 재앙후 여정에 이를 지니고 다닌다. 또 다른 한 부를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데, 그 정체는 책을 통해 확인하자.

"그만두고 싶을 때가 바로 이럴 때야." 어거스트가 속삭였다. "넌 그만두고 싶단 생각 안 해봤어?"
"여행을 더 이상 안 하고 싶단는 뜻이야?"
"그런 생각 안 해봤어? 이것보다 안정된 삶이 있을 거라는?"
"있겠지. 하지만 그 다른 삶 속에서도 내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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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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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고가 오로지 인간의 기억 속에만 각인되어 있던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근사했을 것이다. 그 시절엔 책을 압축하는 대신 인간의 머리를 짜내야 했겠지. 하지만 그래 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진정한 생각들은 바깥에서 오니까. 그것들은 국수 그릇처럼 여기, 우리 곁에 놓여 있다. 세상의 종교재판관들이 책을 태우는 것도 헛일이다. 가치 있는 무언가가 담긴 책이라면 분서의 화염 속에서도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진정한 책이라면 어김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리킬 테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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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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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회에서 의원들과 정부 각료들이 가뭄 비용에 대한 언쟁 끝에 결국 백만장자들이 비용을 대야 한다는 결의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나도 백만장자였던 것이다. 슈로우베크와 브란데이스 같은 백만장자처럼 내 이름도 백만장자들 이름 옆에 나란히 신문에 실리게 되기를 기대했다. 가뭄이 내게 행운의 별을 보내준 것이었다. 불행한 상황이 내게 행운이 되고 내가 꿈속에서 대공이 나를 귀족 신분으로 승격시켜주기를 희망했던 대로 나를 그 자리에 데려다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견습 웨이터 때처럼 작지만 이제는 큰 사람이 되었다 백만장자가 된 것이다.

나는 명단에 백만장자 한 사람이 누락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소환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백만장자라고 했다. 그는 서류를 들고 연필로 이름을 하나한 짚어가며 확인하더니 나는 백만장자가 아니니 안심하고 집에 가라고 했다. 그건 착오일 것이며 나 자신이 백만장자라고 했더니, 그가 내 어깨를 잡고 정문으로 데려가 등을 떠밀며 소리쳤다. "내 명단에 당신 이름이 없단 말이야. 그러니 당신은 백만장자가 아니야!" 나는 저금통장을 꺼내 그에게 통장에 들어있는 백십만 코루나와 십 할리르스를 보여주며 의기양양하게, "그럼 이건 도대체 뭡니까?" 하고 물었다. 그가 통장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사정하듯이 "그러니 나를 내쫓아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하자, 그가 자비를 베풀어 나를 신학교 안으로 끌고 들어가 내가 수용되었다고 선포했다.

나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가진 백만 코루나와 채석장 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백만장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내 백만, 내 이백만 코루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자신들 사이에 있는 걸 참고는 있었지만, 내가 자신들에게 결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백만장자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오래전부터 많은 돈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전쟁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벼락부자를 자신들 사이에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신분에 어울리는 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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