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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평점 :
이 책은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자서전이다. 짐바르도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어떻게 사회심리학자로서 평생을 살아가게 됐는지 어린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의 삶을 보면 당대를 살아간 한 인간에게 볼 수 있는 특별하지 않는 성장과정이지만 자신이 살아가고자 했던 삶의 방향이 학자로서의 연구 방향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먼저 어린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짐바르도가 살았던 20세기 초는 평범한 집안의 누구나 그러했듯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특히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자녀로 미국에서 살면서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와 가난한 집안 상황, 자칫 범죄자로 빠져들 수 있었던 위기 등 어린시절의 기억을 회상한다. 이 대목을 보면서 평범한 이야기지만 대부분은 집안이 가난하면 교육받기를 포기하고 방향을 잃은 삶을 살기 쉬운데, 짐바르도는 이런 환경에서도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일찍부터 깨닫고 학자로서 살아가기를 결단했다는 점에서 비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바르도는 우여곡절 끝에 사회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그저 평범한 연구자였다면 그의 이름이 심리학의 주요 실험을 연구한 사람으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학계에서 두고 두고 연구되고 있는 '교도소 실험'을 통해 한 인간이 권력을 가지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메커니즘을 낱낱이 파헤쳤다. 그는 이 실험으로 일약 스타 심리학자로 발돋움했고 대표적인 심리학 실험의 목록에 자신의 연구성과를 남겼다.
이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실험을 위해 준비된 교도소에서 연구에 투입된 학생들은 죄수와 간수라는 역할을 각각 맡았고 짐바르도의 실험 조건에 따라 충실히 책임을 다했다.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죄수와 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이것이 실험이라는 사실을, 자신들이 학생이라는 사실을 잊고 실제 교도소에 갇힌 듯 반목하고 갈등을 일으키며 사회적 권력과 그 관계의 내밀한 이면을 보여줬다. 짐바르도는 이 실험으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때 그에 맞는 책임을 다하면서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지위로서 행동하고 결정한다는 심리적 기제를 밝혀낸다. 사람이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후에도 그는 다양한 실험을 하였고 굵직한 성과를 만들었다. 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에도 그는 학교에서 연구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교를 넘어 인간과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사고와 행동, 어떤 선택과 결정이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설파했다. 비록 그의 연구들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가 증명한 인간의 상황에 대한 종속은 인간의 성향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짐바르도의 학자로서의 사명과 삶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