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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7월
평점 :
삶에서 겪는 이별 중에 가장 슬픈 이별은 생사가 엇갈리는 이별이 아닐까 싶다. 다시 보고 싶어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슬픔은 어떤 슬픔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다. 이 소설은 그런 이별을 주제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헤이스케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는 슬픔을 당한다. 사랑하는 아내 나오코와 딸 모나미가 큰 사고를 당하고 병실에 의식을 잃은 채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헤이스케는 큰 슬픔에 빠진다. 사고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아내는 온몸의 부상으로 위독한 상태이다. 의사의 소견처럼 아내는 곧 세상을 떠나고 헤이스케는 홀로 누워있는 딸을 바라보며 의식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그의 간절한 소망 때문인지 딸 모나미가 의식을 되찾는다. 그런데 들려오는 말은 뜻밖이다. 자신은 딸 모나미가 아니라 아내 나오코라는 대답이다. 헤이스케는 그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내밀한 문답으로 딸의 몸을 입은 사람이 딸 모나미가 아니라 아내 나오코라는 사실을 믿게 된다.
헤이스케는 딸의 몸에 아내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외부에 말해도 오히려 자신과 딸이 정신질환이나 초자연현상에 빠진 것이라 생각할 세간의 시선 때문에 퇴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나오코와 일상으로 돌아오려 한다. 이 사실은 둘만의 비밀이 되어 집밖에서는 영락없는 아버지와 딸이지만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로 지낸다.
헤이스케 입장에서 보면 딸의 모습이지만 말도, 표정도, 행동도, 생활도 아내 나오코의 그것과 똑같기에 너무나 혼란스럽고 앞으로 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하지만 드러나면 안 되는 비밀을 안고 사는 것이 괴로울지 감정이입이 됐다. 아내의 몸은 장례식을 하며 보내줬지만, 영혼은 남아있고 딸은 영혼이 떠나고 몸이 남아있는 상황. 소설이고 허구이기에 감안하며 읽었음에도 주인공 헤이스케의 인간적 고뇌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헤이스케와 나오코는 현실을 살아가야 했다. 나오코는 모나미가 되어 학교에 다시 다니고 헤이스케는 평범한 학부형의 삶을 살아간다.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다. 그 배경에는 나오코의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이 있었다. 모나미는 헤이스케와의 삶이 행복했지만 개인적으로 꿈을 펼치지 못해 늘 만족스럽지 못한 삶이었는데 사고를 당하고 어린 딸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그동안 꿈꿔오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던 바람이 있었다. 나오코의 이런 소망이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해돼서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오코가 마음은 성인이지만 의식과 신체는 미숙하기에 성장을 하며 헤이스케와 남편과 아내로서가 아니라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서 갈등을 겪으며 서로의 삶의 지향과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됐다. 헤이스케는 늘 마주보며 대화하는 존재인 나오코에게는 남편이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상대방은 모나미 즉 딸의 모습이기에 헤이스케는 아내가 아닌 딸로서 어디까지나 지켜주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헤이스케의 소망과 나오코의 소망이 엇갈리며 새로운 갈등이 된다. 그리고 소설이 마지막으로 향하며 그동안 두 사람이 지켜오던 세상에 대한 비밀이 서로를 향한 각자의 비밀로 끝나며, 소설은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는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재 일본에서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데뷔 이래 수많은 작품을 발표해오며 여러 히트작을 만들어냈고 다수의 소설이 드라마화되거나 영화화됐다. 이 소설도 영화화된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덮으며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만감이 교차했다. 작품으로만 놓고 보면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소재가 있어서 아쉬웠지만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겪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은 다분히 현실적이기에 여러 생각을 해본 계기가 되었다.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흥미로운 독서의 시간을 제공해주리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