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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약탈 국가 - 아파트는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되었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8월
평점 :
이번 정권 들어서 부동산 정책이 연일 강력해지고 있다. 부동산만큼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대통령과 부동산 정책 당국자들은 부동산에 대한 규제책을 짧게는 몇달 사이로 새롭게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강한 의지와는 달리 부동산 가격은 연일 오르고 있고 이득을 보는 사람 따로, 피해를 보는 사람 따로, 예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부는 작금의 부동산 문제에 대한 대응책이 과도했고 실패였음을 사실상 시인하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지난한 부동산 정책 실패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생각이 드는 때, 한국의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를 자세히 다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적 현상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통찰을 보여주는 언론인이자 지식인인 강준만 교수가 쓴 책이다. 저자가 저술한 수많은 저서들을 읽으며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고 이번 책을 통해서도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부동산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부동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만큼 저자는 부동산 문제가 대두된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우리에게 부동산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현재의 의미를 얻게 되었는지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각 장마다 명언 등 인용구를 서문에 쓰고 그에 관련해 내용을 풀어나가는 에피그래프 에세이 방식으로 쓰여졌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짧은 한줄을 먼저 보여주고 그 문장을 토대로 저자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부동산은 한국 사회에서 계급적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가장 현실적인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부를 획득한다는 것, 낮은 계급에서 높은 계급으로, 못 가진 계급에서 부유한 계급으로 이동하는 가장 중요한 길은 시장 경제의 토대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공급과 판매를 통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장에 참여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나뉘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서 인용된 문구 중에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온건 정당은 방조하며, 보수 정당은 조장하며, 급진 정당은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문장이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기판에 뛰어들게 하는 데는 정부의 정책이 가장 큰 몫을 했다. 이 책은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이 번갈아가며 어떻게 국가를 투기판으로 만들어왔고 국민들을 투기꾼으로 만들어왔는지 그 낯뜨거운 민낯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어떤 정당이냐에 관한 문제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할만큼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은 국민의 삶에 무관심했고 무지했고 무능했다. 하지만 부동산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는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고 영리했고 능력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정치인들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부동산이 있냐 없냐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있는 현실에서 '부동산에 투자한다, 부동산으로 재테크한다' 는 의미로 부동산 투기는 시장 경제의 논리로 합리화되고 있다. 그런 투기장에 참여하지 못해 자기 집 하나 갖지 못한 사람은 병리적인 사회구조의 피해자가 아니라 무지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경제 구조는 시장 경제가 아니라 약탈 경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이 있으면 합법적으로 서민들은 약탈할 수 있고 부동산이 없으면 속절없이 빼앗겨야 하는 구조를 합법화한 나쁜 사회이고 나쁜 정부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내 집 하나 없는 서민이, 내 가게 하나 없는 서민이 전세나 월세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직 한국 사회에는 머나먼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고 없는 사람들은 끝까지 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 책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하면 냉정한 시대를 건너갈 수 있을지 진단한다. 이 책을 한국의 부동산 문제에 대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파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