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힌 시들을 꺼내어 읽었습니다.

백석의 내음들은 여전히 거기에 진하고 수영의 시들은 나의 생활과 설움에 맞닿아 반짝 별로 떠오릅니다.

수많은 작가들, 오색의 빛깔들이 생명의 나무에 이파리처럼 매달려 있고 빚어지는 글자들은 차마 헤일 수 없이 고요합니다.


싸드는 편견의 숲에서 걸어나와 서릿발같은 날카로움으로 나의 신념과 도덕을 아프게 파고들고, 

이반일리치는 전문가 혹은 그와 같은 세력들을 경계하고 무엇보다 나에 의지하고 끝까지 가파르게 저항하라고 가르칩니다.

마치 흔한 자기계발서 같은 에머슨의 간헐적인 자기신뢰라는 아포리즘도 여느 구태의 말들과는 다르게 더욱 깊이가 있고 설득력이 있네요.

마르크스부터 프랑스 철학자들까지 서양의 철학사들을 읽으며 시간을 잊구요, 무지한 역사와 세계사에 대하여 새록새록 알아가는 재미는 마치 맥주와 함께 씹는 쥐포처럼 참으로 간드러집니다.


한가로운 일요일 필립 말로와 안면을 트고, 최근에는 트루먼 카포티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까지 만나고 있습니다.

나만의 컬렉션은 119번째까지 그 리스트를 늘렸고 그 119번째가 바로 김수영입니다.

읽고 난 리뷰를 쓰고자 하는 타이밍은 번번히 놓치지만, 언젠가부터 다시 나만의 컬렉션 그 1번부터 마음이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읽고나서 나의 생각을 괴롭히고 잠을 앗아가는 그러한 책들에 관해서요...


드디어 펜을 다시 들었고, 내 손을 잠에서 깨게 한 그 시 한 줄을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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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설움마저 보낸 뒤

빈 방안에 나는 홀로 머물러 앉아

어떠한 내용의 책을 열어보려 하는가



- 김수영, 「방 안에서 익어가는 설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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