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만 보아도 우울한 느낌이 든다. 왜 제목이 쫓기는 아이인지... 아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하긴 한데.... 선뜻 책을 펼쳐 보기가 두렵기 까지 했다. 어린이가 휘귀해진 미래의 사회.. 어린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주인공인 태린은 이런 미래사회에 살고 있다. 언제 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태린은 디트라는 자의 보호 아래 아이가 없는 사람들과 놀아 주고 돈을 버는 일을 한다. 물론 디트는 어떤 혈연관계도 하닌 단순한 보호자일뿐. 그는 태린의 돈벌이로 살아가는 거머리 같은 인간이다. 스스로 태린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태린이 필요한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줄 만큼 씀씀이에 관해서는 제법 너그러운 편이기도하다. 그렇지만 태린은 행복하지 않다. 억지 웃음을 지으며 한 시간동안 어른들과 놀아 주어야 하는 태린.. 스스로를 삼촌이라 부르라고 하는 디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미래 사회에서 어린이는 금보다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일단 거리로 나서는 순간 유괴범들이 태린을 노릴것이 분명하고... 태린은 자신의 실제 부모를 찾고 싶지만 언제나 감시를 놓치 않는 디트때문에 부모를 찾는 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태린은 미래사회에서 희소의 가치가 있으므로 디트는 영원히 어린아이로 멈추게 하는 피피수술을 받게 하려고 벼르고 있다. 미래 사회에서는 더 이상 늙지 않기 위해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겉모습으로는 그들의 나이를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그들은 200년 정도를 살 수 있으며 약 40세의 나이로 보이도록 하려고 수술을 받는다. 그렇지만 태린은 그런 수술을 받고 싶지 않다. 또한 유괴범에게 쫓기는 생활도 억지 웃음을 지으며 돈을 벌어야 하는 지금의 처지도 모두 모두 거부하고 싶다. 그냥 어린 아이로 아이답게 살고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어른이 되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평범한 소망이 있을 뿐이다. 이런 태린의 소망은 이루어 질 것인지. 무엇보다 디트의 손아귀에서 벗어 날 수 있을 런지.....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 스럽다는 것.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미래사회에는 외면해야 할 대상인가? 작가가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행복의 조건은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과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