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소설Y
조은오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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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

조은오, 『버블』(창비, 2024)

열고 다가가고 마침내 손을 잡으려는

단단한 외로움을 걷어내는 성장의 움직임

창비 출판사에서 조은오의 첫 장편소설 『버블』이 소설Y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소설Y 시리즈는 『위저드 베이커리』『나인』『스노볼』 등 이야기 본연의 매력과 다채로운 문학적 사유를 전해 온 창비의 국내 소설 시리즈다. 조은오의 『버블』은 세계가 '버블'이라는 가림막에 휩싸여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 맺기에 제한을 건 독특한 환경이 배경인 소설이다. 통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의 위태롭고 확신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결국 자신을 둘러싼 오래되고 이상한 세계를 부수는 열쇠라는 것을 이야기로서 증명한다.

*출판사의 요청으로 스포일러성 후기가 없는 개인적인 생각만 적은 서평임을 미리 밝힙니다.

창비Y 시리즈 서평단을 신청한 큰 이유는 작가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건 편견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읽을 명분만 충분하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은 작가의 문장일 것이다.

나의 완벽한 세계에 균열을 내기로 했다.

당차면서도 자신의 세계에 균열을 내겠다는 말은 어딘가 파괴적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아름다운 문장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을 부수고 망가지겠다는 불온한 문장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래서 신청했다. 이런 문장을 카피로 내건다면, 정말 세계를 부수는 소설이거나 읽을수록 짜증 나는 소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30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인 만큼 전자에 희망을 걸었고, 그 희망을 두 배로 돌려받았다.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이다.

이 소설이 좋은 이유는 작가가 설계한 세계에 치밀한 매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앙과 외곽이라는 공간을 분리해두고 각 세계가 서로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세계의 매커니즘에 반하여 살아갈 수 없음을 초반부터 미리 알려준다. 더 말할 순 없지만스토리적으로도 만만하게 볼 소설이 아님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는 이름, 주인공은 07, 126이다. 몇 개의 숫자로 된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숫자로 제시한 이름이 그저 신비로운 뉘앙스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중앙이라는 통제된, 규칙에 사로잡혀 타자와의 소통이 불가한 공간에 숫자로 된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타자를 사물화하여 서로를 감각하지 않는 장치로 사용된다. 이는 이 소설에 중요한 지점으로 보이며 주인공인 07이 자신이 살아가는 버블이 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그 순간 독자도 이상하다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이름에서부터 이미 힌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치밀한 설정이 독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듯하다.

마지막으로는 복잡함이다. 유의미한 복잡함. 성장 소설인 만큼 단순한 플롯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인식 - 도전 - 좌절 - 성취'의 구조에 자잘한 변형이 있다. 결말도 특히 그러하다. 정말 결말.. 예상하진 못했다. 굿.

결론은 좋은 소설이다. 오랜만에 후속작이 나와서 내가 알게 되면 사게 될 작가가 나온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좋은 소설을 읽었다. 구체적인 세계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소중함을 잃고 있는 요즘 세상에 필요한 소설이 등장한 듯해서 좋다고도 본다. 소설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꼭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그전에 재미만 있어도 장땡이긴 하다) 이 소설은 재미와 메시지가 적절한 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알게 되었지만, 이 소설을 쓰신 작가는 조은오 작가라고 한다. 작가가 바라보고 열어 확장하고자 하는 세계가 현실에도 천천히 서서히 실현되기를, 버블을 터트리고 더는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하려는 세상이 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누구나 눈을 감고 살아가던 시절은 있으니까.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나 손을 잡기도 하겠지. 그렇게 세상은 절벽도 도로도 있는 복잡하고 이상한데 살고 싶은 세계가 되는 건 아닐까.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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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김경수 지음 / 필로소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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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도 읽었지만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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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씽킹 -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
최혜진 지음 / 터틀넥프레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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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생각의 새로움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터틀넥프레스, 2024)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획

익숙한 생각에서 새로운 지점을 찾다

문학동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 '독파'에서 진행하는 5, 6월의 독서로 터틀넥프레스에서 출간된 최혜진의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게 되었다. 출간 당시 기획자들에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책으로, 최혜진은 촘촘하고 단단한 기획을 할 수 있는 기반에 집중한다. 두루뭉술한 생각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이미 세상에 제시된 기획과 어떤 차별점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출판 편집자가 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이 직업으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일에 적응하고 있지만 아직도 가늠이 안 되는 지점이 몇 가지 있다. 출판 편집자는 과연 기획자인가, 편집자인가? 현재 출판계에서는 두 부류의 편집자가 있다. 기획(편집)자와 (기획)편집자. 어느 것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아예 에디터로 불리며 기획만 하는 편집자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들은 모두 편집자라는 것. 어떻게든 편집을 하게 되어 있다. 이 점이 나의 걱정을 덜어준다. 기획자든, 편집자든 우선 편집이 우선이 되어야 하니까.

편집을 한다는 건 안에서 바깥으로 다루는 텍스트(또는 무언가)를 확장하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새로움에 집착하게 된다. 더 새로운 건 없을까, 내가 놓치고 있는 이슈는 없을까. 나는 이제 나올 건 다 나왔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이미 많은 것이 나왔기 때문이다. 요지 야마모토는 "인간이 만든 물건 어딘가에서 흉터, 실패, 무질서, 왜곡을 발견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흉터, 실패, 무질서, 왜곡은 이미 있는 대상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생산되고 만들어진다. 이제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새로움의 정의는 바뀌어야 한다. 'New'가 아닌, 'Reproduction'에 가까운 것. 그것이 현대의 새로움이다.

『에디토리얼 씽킹』에는 내가 생각하는 복합적인 기획의 기반을 마련할 여러 소스가 있다. 창작자로서 차이를 만드는 기획이라는 뒤표지 카피를 보았을 때, 두루뭉술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목차에서 제시하는 기획 방법은 조금 체계적이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세세한 예시와 자료로 가득해 기획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제공한다. 아마 나처럼 처음 기획자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가질 만한 고민은 이 책에 다 담겨 있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여긴 지점은 저자의 태도이다. 저자가 어떻게 자신이 기획을 대하는지, 기획을 타인에게 내놓을 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를 먼저 보여준다. 나는 좋은 기획은 배우면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기획을 따로 배우고 공부하면 어느 수준의 기획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좋은 기획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좋은 기획을 위한 마인드를 보여주면서 미래의 기획자들에게 어떤 태도와 방향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이 이러한 지점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새로운 의미를 빚어가는 행위는

지각, 패턴 인식, 연상, 범주화, 기억 검색, 추론, 맥락화 같은

복잡한 인지 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

"저는 이 사안/작품/현상/데이터를 읽고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제가 가진 입장은 이것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소중하고 가치 있다.

「에디토리얼 씽킹을 시작합니다」, 37p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힘들지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획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고려한 기획은 빛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귀한 마음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다만, 그 마음을 가져갈 수는 없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마음을 본 미래의 기획자는 그 마음을 그대로 가져가진 않을 것이다. 스스로 유리를 깨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을 스스로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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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읻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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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이라는 삶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황유원 옮김, 『패터슨』(읻다, 2024)

패터슨에서 패터슨으로

도시와 폭포의 언어로 말하는 시

읻다 출판사에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패터슨』이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출간되었다. '패터슨'이라고 하면 2017년에 개봉한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떠올릴 것이다. 인기 있는 영화인 만큼 주인공 패터슨과 그가 살고 있는 도시 패터슨, 그리고 그가 읽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다만 국내에 완역본이 없었기에 이번 읻다에서 출간된 『패터슨』은 특별하다. 황유원 시인이 번역을 맡은 만큼 세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만날 수 있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에즈라 파운드와 앨런 긴즈버그처럼 미국 20세기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시인이다. 이미지즘의 창조자라 불리는 만큼 『패터슨』에서도 실험적이며 획기적인 시구와 시어들의 호흡이나 리듬을 볼 수 있다.

혹시 김해를 아시나요? 나의 고향은 김해다. 가끔 나의 경상도 말씨 때문에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김해라고 말하며 저 질문을 꼭 붙인다. 김해를 아는가? 당신이 아는 김해와 내가 아는 김해는 다르다. 당신의 고향과 내가 아는 고향이 다르고 당신의 서울과 나의 서울은 또 다르다. 우리가 기억하는 도시는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이미지의 형상화다. 기억하는 만큼 보이는 도시라면 기억은 고정적인 것일까? 그것은 또 아닐 것이다. 도시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극진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도시의 애정을 본다. 애정에는 이미지가 있다. 김해에는 겨울마다 물이 없어 바닥이 드러난 연지공원의 호수가 있는 것처럼. 그 이미지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그 도시로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패터슨』은 미국의 도시 패터슨을 중심으로 퍼세이익 강과 '그레이트 폭포'에서 시작된다. 윌리엄스는 패터슨의 퍼세이익 폭포가 흐르는 물에서 힘과 이미지를 포착해 패터슨의 역사를 말한다. 압도적이면서 거대한 광경. 패터스는 도시의 역사이자 사물이고 사람이며 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고 두꺼운 서사시는 도시의 설명서 같은 것인가? 그것은 또 아니다. 윌리엄스는 언어가 '말하듯이' 뿜어져 나오는 것에 집중한다. 생략되기도 하고 아주 깊고 세밀하게 말해지기도 하는 폭포와 강물의 물줄기 그리고 물이 지나간 곡선의 자리처럼 말이다. 황유원 시인은 윌리엄스의 언어를 그대로 옮겨 도시를 도시에서 꺼내 흐르는 폭포처럼 보여주는 것에 성공한다. 그래서 패터슨은 구멍 뚫린 치즈처럼 아름답다. 들여다볼 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패터슨은 몇 년에 걸쳐 작성되었다. 도시를 이루는 자연 요소를 통해 패터슨의 전체 구성을 보여주는 1권은 1946년에 나왔고 2권은 도시 공간에서 사물과 인간 그리고 문명의 여러 면모를 현대적인 언어로 재창조했다. 1948년에 나왔다. 3권은 파괴된 댄포스 공립 도서관, 퍼세이익 강의 범람 등 여러 재난을 통해 '아름다움'의 파괴성을, 4권은 강에서 바다로 시선을 옮겨 현대 문명을 말한다. 각각 1949년, 1951년에 나왔으며 1958년에 나온 마지막 5권은 다시 패터슨으로 돌아간다.

나는 내가 태어난 김해를 매우 미워했고 싫어했으나 지금은 좋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에는 다양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김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김해. 내가 아는 김해를 당신들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패터슨』 몰랐던 것처럼, 이제 내가 아는 패터슨은 윌리엄스가 본 패터슨이기에, 당신들이 아는 김해를 내가 아는 김해로 바꾸고 싶다. 그것이 시인의 역할이라면 나는 잘할 자신이 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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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앤드 산문집 시리즈
강혜빈 지음 / &(앤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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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은 의도할 수 없어서

강혜빈,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넥서스 앤드, 2024)


여럿이면서도 하나인 마음을 열면

다정하고 어두운 용기가 있어

넥서스 출판사의 브랜드 앤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가 출간되었다. 강혜빈 시인의 첫 산문집이면서도 시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어 사진 산문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밤의 팔레트』, 『미래는 허밍을 한다』에서 보여주었던 환한 용기와 사랑의 질주를 산문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만큼, 조금 더 세심하고 구체적인 시인의 세계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시를 쓰는 나는 살면서 딱 한 번 시인에게 시가 좋다고 dm을 날려본 적이 있다. 19년도였나,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일 그 메시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가 너무 좋았기 때문. 그 당시에는 너무 좋은 시를 읽으면 참을 수 없이 마음이 뜨거워져서 버틸 수가 없었다. 좋은 것은 너무 좋다고 말하는 수밖에. 나에게는 그 사람이 강혜빈 시인이었다. 등단작을 읽고 너무 좋다고 대여섯 줄 정도 써서 보낸 것 같다. 답장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저 좋다는 말이 닿길 바랐던 것이기에 보내고 아무 생각도 없이 누워서 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답장이 올 줄은 몰랐지. 환하고 다정한 용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이 사람의 시를 기다렸나. 첫 시집 『밤의 팔레트』는 밤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용기였고 다음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는 조금 더 시인의 시적 세계를 확장해 용기와 사랑이 삶을 껴안아 주변을 환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용기와 사랑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다면 이 시인 같은 모습이겠구나 싶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는 내가 생각했던 시인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금 다른 컨셉을 잡아서 지루할 뻔한 부분을 잡은 것 같다. 어딘가 있으면서도,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당신을 호명하며 시인은 자신을 되돌아본다. 뒤표지 카피처럼 무수히 당신도 나와 같은 모습과 태도를 가졌는지, 당신도 꾸준히 실패하고 갑자기 다정하며 선잠을 자면서도 꿈과 기쁨을 세는지. 질문하는 방식으로 시인과 독자의 경계를 허문다. 시인의 용기가 어색하지 않게 그러한 태도를 행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큰 장점이자 좋음으로 다가왔다.

열차는 점점 더 세게 흔들린다.

손잡이를 잡지 않은 채 중심을 잡는 일은 쉽지 않고,

쉽지 않은 일은 쉬운 일보다 더 많이 있지만,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서서 갈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편지 X 부드럽고 환한 레몬 마들렌」 23p

누구나 자신의 세계가 흔들릴 때가 있을 것이다. 중심을 잃고 사람들과 뒤섞이거나, 어떨 때는 뒤섞인 사람과 자신이 같은 사람이고 스스로 자아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진솔하게 자신이 흔들린 여러 과정을 꺼내 놓는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당신은 그런 적이 있는지, 당신의 세계에서는 마음이 연체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진 않는지, 잠은 잘 자고 꿈은 어떤 꿈을 꾸는지 묻는다. 시인은 당신을 호명하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수신인과 연결되려고 한다. 시인은 왜 연결되려 하고 세계를 확장하는가. 이유가 있다면 시인은 굳이 흔들릴 때 흔들리면서 보이는 빛의 실루엣들을 관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흔들렸고 갑자기 당신이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궁금하고 나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를 이어 우리 조금만 덜 흔들리고 살아가자는 마음일 것이다. 세상은 이러한 시인의 태도를 다정함이라는 마음으로 부른다. 다정은 절대 의도할 수 없다. 시인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나아가기 때문에 다정할 수 있다.

사실, 넥서스 서평단으로 신청을 했지만 떨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야 서평단을 하든 말든 좋았던 책만 신청하고 읽지만, 이 산문집은 내가 너무 좋아했던 시를 쓴 사람이 쓴 첫 산문집이니까 살 수 있어 좋은 마음인가. "좋아해? 좋아해."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시를 써서 좋다. 그리고 시를 쓰는 사람이 산문을 써서 더 좋았다고. 흔들리는 세계를 사진으로 찍은 듯한 풍경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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