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면서도 하나인 마음을 열면
다정하고 어두운 용기가 있어
넥서스 출판사의 브랜드 앤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가 출간되었다. 강혜빈 시인의 첫 산문집이면서도 시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어 사진 산문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밤의 팔레트』, 『미래는 허밍을 한다』에서 보여주었던 환한 용기와 사랑의 질주를 산문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만큼, 조금 더 세심하고 구체적인 시인의 세계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시를 쓰는 나는 살면서 딱 한 번 시인에게 시가 좋다고 dm을 날려본 적이 있다. 19년도였나,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일 그 메시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가 너무 좋았기 때문. 그 당시에는 너무 좋은 시를 읽으면 참을 수 없이 마음이 뜨거워져서 버틸 수가 없었다. 좋은 것은 너무 좋다고 말하는 수밖에. 나에게는 그 사람이 강혜빈 시인이었다. 등단작을 읽고 너무 좋다고 대여섯 줄 정도 써서 보낸 것 같다. 답장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저 좋다는 말이 닿길 바랐던 것이기에 보내고 아무 생각도 없이 누워서 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답장이 올 줄은 몰랐지. 환하고 다정한 용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이 사람의 시를 기다렸나. 첫 시집 『밤의 팔레트』는 밤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용기였고 다음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는 조금 더 시인의 시적 세계를 확장해 용기와 사랑이 삶을 껴안아 주변을 환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용기와 사랑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다면 이 시인 같은 모습이겠구나 싶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는 내가 생각했던 시인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금 다른 컨셉을 잡아서 지루할 뻔한 부분을 잡은 것 같다. 어딘가 있으면서도,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당신을 호명하며 시인은 자신을 되돌아본다. 뒤표지 카피처럼 무수히 당신도 나와 같은 모습과 태도를 가졌는지, 당신도 꾸준히 실패하고 갑자기 다정하며 선잠을 자면서도 꿈과 기쁨을 세는지. 질문하는 방식으로 시인과 독자의 경계를 허문다. 시인의 용기가 어색하지 않게 그러한 태도를 행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큰 장점이자 좋음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