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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 죽음이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될 때
“죽으면 다 똑같다”는 말은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위안을 담고 있지만, 《죽은 다음》은 그 말이 얼마나 허망한 체념인지, 얼마나 많은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하는지 차근히 드러낸다. 이 책은 죽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우리 사회의 노동, 제도, 문화, 관계, 감정의 지형을 샅샅이 탐색하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린다.
저자는 장례지도사 실습생으로 현장을 몸으로 겪으며 시신 복원사, 염습자, 상조회사 직원, 유족들을 만난다. 죽음을 생업으로 맞이하는 이들과, 예기치 않게 죽음 앞에 선 이들을 통해 죽음이 상품이 된 시대의 잔혹한 풍경을 고발한다. 빠듯한 장례 일정, 외주화된 의례, ‘정상 가족’ 중심으로만 작동하는 제도는 죽음조차도 경제력과 가족 구성 여부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뤄지게 만든다.
특히 이 책은 무연고자의 죽음을 추적하며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죽음이 어떻게 방치되고 사라지는지를 조명한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죽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되묻는다. “혼자 죽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책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다. ‘나답게 죽고 나답게 기억되는’ 장례란 무엇인가. 치마 대신 바지를 입히고, 화환 대신 반려동물의 양육비를 남기며, 냉면을 장례식 음식으로 바라는 죽음의 목록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정상성’에서 벗어나 있었던 개인들이 마지막까지 자기다운 죽음을 희망하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곧 ‘다른 공동체’, ‘다른 삶’, ‘다른 애도’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죽은 다음》은 죽음을 사적인 사건으로 고립시키지 않는다. 이 책은 애도와 장례를 통해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새로운 삶의 방식—가족 밖의 관계, 제도 밖의 애도, 자본 밖의 존엄—을 모색하게 만든다. 죽음을 제대로 다룬다는 것은 결국 삶을 제대로 살아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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