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을 타자마자
위태로워지는 노거수 이야기
한겨레출판에서 김양진 기자의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이 출간되었다.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국내 1호 나무 전문 기자'로 알려진 작가는 수많은 현장을 취재하며 오랜 기간 방치되거나 사랑받아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나무 한 그루를 지켜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한겨레21》에 연재한 글을 고르고 보완해 묶은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은 나무 한 그루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 생태학적 지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역사·사회·문화적 맥락을 함께 짚으며 인간과 나무가 맺는 관계를 다층적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아빠가 유년기를 보냈던 남해의 어느 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276호로 지정되었던 느티나무가 있다. 한 쪽으로 아주 치우친 그 느티나무는 사람 네 명이 안아도 전부 안을 수 없을 만큼 크다. 아마 내가 어렸을 시절(20년 전)까지만 해도 잘 살아 있었던 것 같다. 500년이나 산 노거수인 만큼 내가 죽을 때까지도 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나무는 태풍 피해 및 노쇠로 자연 고사해 2013년 1월에 지정이 해제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나무의 모습은 지지대로 나무의 한 쪽 측면을 받쳐 억지로 세워 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기후 위기도 생각했지만, 나무를 보호하는 것 자체가 어떤 문화를 보호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이 나무 아래에서 나무보다 오래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린 느티나무를 심고, 나무와 비슷한 나이인 사람들이 그늘 밑에서 쉬고, 나무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이 모여 당산제를 지내고,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내가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올려다 본 나무의 시간을 떠올린다. 노거수를 지킨다는 건 이 모든 시간이 쓰러지지 않도록 거치대를 세워 온 마음으로 모두가 문화를 지키는 행동인 것이다.
김양진 기자의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노거수 20그루와(숲이나 숲길도 있음, 부르기 쉽게 그루로 표현함) 서울 궁산 나무들을 소개한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좋은 나무들은 현재 개발과 손익의 손 아래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 "나무 할머니 나무 할아버지"가 영영 사라질 위기인 것이다. 이미 사라진 나무들도 있다. 내가 좋아했던 진주천의 버드나무는 2023년에 다 베어졌다. "홍수가 나면 나무가 쓰러질 것 같았다"던 지자체들의 답변은 어리석다. 나무의 특성을 모른 것이다. 왜 그곳에 심어졌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테다. 버드나무는 대표적인 수해방지림이다. 홍수 때는 물을 빨아들이고, 뿌리가 흙을 잡아 토양 유실을 막아주는 대표적인 나무다.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에는 이런 슬프지만,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