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몬스터
이두온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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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서로에게 아주 진심이어서

괴물이 된 사랑.

궁지에 몰린 사랑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창비에서 출간될 예정인 『러브 몬스터』는 너무 사랑해서 괴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다정한 모습의 사랑이 아닌, 강렬한 정념에 이끌려 서로를 갉아먹는 사랑의 형태를 추적하며 천천히 풀어낸다. 나라에서 권장하는 이성애, 바람 등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불완전하고 비뚤어진 사랑은 소설뿐만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하고 이들은 온몸을 내던지며 사랑에 몰두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어떻게 발현되고 삶에서 다뤄지는지를 그려낸다. 사랑하기에 서로를 누구보다 더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믿지만 누구보다 믿을 수 없으며 어떤 마음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랑. 진심인 쪽이 괴물로 변해야만 하는 사랑 앞에서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랑은 어느새 독자들의 곁에서 하나의 질문으로 남아 주변을 정신없이 어지럽힐 것이다.


무엇도 준비된 것이 없어 할 수 없는 사랑

비뚤어진 사랑이 가득한 비뚤어진 세상


‘엄지민’은 사라진 엄마 ‘염보라’를 찾기 위해 결혼을 장려하는 지자체가 설립한 수영장인 ‘미혼반’에 들어가 수영장에 다니는 회원과 강사를 주시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계속해서 남자를 만나던 ‘염보라’가 암에 걸려 딸인 ‘엄지민’은 빚을 갚기 위해 엄마를 찾게 되고, 수영장에 다니던 ‘허인회’는 자신을 구해준 ‘조우경’을 사랑하게 되고, ‘허인회’의 남편 ‘오진홍’은 동창인 ‘염보라’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발현되는 사랑을 무시할 수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에 대응하는지, 그 사랑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이야기가 작가의 질문으로도 읽힌다. ‘엄지민’은 ‘염보라’를, ‘허인회’는 ‘오진홍’과 ‘조우경’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사랑은 얼마나 사람을 구차하게 만드는지, 사랑하는 동안 해왔던 이해와 포용이 진정한 의미의 이해와 포용이 아니었음을 직시하면서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의 전혀 모르는 부분을 새로 알아가게 된다.

이들이 이렇게 불완전한 사랑을 하게 되는 이유로는 불완전한 사람이라서가 아닌 불완전한 세상이 완전하고 이상적인 형태의 삶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과 차 그리고 돈도 없이 마주하는 세상은 어둡고 기이하다. 의지할 곳 없는 곳에서 준비된 사람을 찾기란 어렵고 준비된 사람은 준비된 사람을 만나기에 만남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한 사랑을 찾다가 우연히 또는 자신도 모르게 숨겨왔던 사랑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사람은 괴물이 된다.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스스로 재가 될 때까지 자신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사랑이 끝에 다다랐을 때 마주하는 세상과 자신이 한 사랑은 비슷하게 비뚤어져 있을 것이다. 작가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사랑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망가지는지를 되짚으면서 사랑의 자리를, 현실이 보려 하지 않는 뒤틀린 사랑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랑이 그런 것일 리 없다는 견고한 착각을 작가는 『러브 몬스터』를 통해 깨부순다. 완전하고 이상적인 사랑을 내세우며 서로를 갉아먹게 하는 것에 지쳐 괴물이 될 것 같은 독자들은 『러브 몬스터』에서 ‘오진홍’의 “넌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냐?”라는 말에 마음이 내려앉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 눈에 그 사람밖에 안 보이는데 어째서 이게 사랑이 아니야!”라고 반론하는 “허인회”처럼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존재해온 사랑을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사랑은 안절부절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와 함께 사랑의 면모를 관찰하는 과정은 아프면서도 어딘가 시원하기에, 현실의 꽉 막힌 이상향을 뚫을 사이다처럼 적용될 것이다.


*『러브 몬스터』 가제본 리뷰 이벤트로 작가를 맞춰야 한다. 작가를 내세우지도 않고 소설 가제본을 내는 것을 처음 봤기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이것 또한 좋은 마케팅의 방법이 아닌가. 사람들의 궁금증을 극대화하는 것이 마케팅의 한 방법이라면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창비에서 책을 주로 내는 손원평 작가가 아닐까 싶다. 문체나 스타일, 서사를 다루는 방식이 조금 남달랐기에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손원평 작가는 이미 7월에 『튜브』를 냈는데 또 반년 만에 이와 같은 집필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손원평 작가 같다. 아니면 아닌 것이다.

*본 서평은 창비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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