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생각하면 꽃이 먼저 피는 꽃나무 같이 앳되게 당신을 사랑한 것인데 나는 그걸 몰랐다.
나는 늘 봄철 잠깐 꽃 피우고 죽은 듯이 지내는 나무들을 신기해 했는데 지금은 안다.
사랑은 제멋대로 분을 갈았고 나는 분 갈린 식물 대신 시름시름 앓았는데,
 아마 분은 남겨져서 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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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日記


비…… 하늘에서 연필이 참 많이 떨어졌다 딱 한자루만 주워서 혈관 속으로 꽂아넣었다 추억의 과녁에 거꾸로 꽂혔다
창밖으로 우산에 매달린 사람들이 버섯같이 떠다녔다 비를 맞는 나무들은 푸들푸들 떨었다 저녁 무렵 튼튼한 덧니를 빛내며 가족들이 돌아왔다 그들의 반짝이는 팔찌가 내 목덜미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내리깔린 내 눈에서 흘러내리는 새소리, 가족들은 마주보며 재채기를 했다 하루종일 열어놓은 두 귀가 지독하게 팽창하는 오늘은 한 자루의 연필도 지옥처럼 길었다
ㅡ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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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와 나무

갈참나무의 그림자들이 비탈로 쏟아지고 있다
저 검고 지루한 주름들은 나무 속에서 흘러나왔다

내 몸속에서 겨울 문틈에 흔들리던 호롱불이 흘러나오
고, 깻잎처럼 몸을 포개고 울던 누이가 흘러나오고, 한켠
이 캄캄하게 비어 있던 들마루가 흘러나오고....

오후 4시는 그래서 나에게 아주 슬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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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작은 독에 더 작은 수련을 심고 며칠을 보냈네
얼음이 얼듯 수련은 누웠네

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


골똘히 들여다보니
커다란 바퀴가 물 위를 굴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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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


 하지만 오랜 후에 당신이 돌아와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독들을 보신다면, 그 안에 고여 곰팡이 슨 내 기다림을 보신다면 그래, 그래 닳고 닳은 싸리비를 들고 험한 마당 후련하게 쓸어줄 일입니다

내가 안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내게 아무런 해도 닥치지
않기를. 내가 곤경에 처하지 않기를. 내게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기를.내게 항상 성공이 찾아오기를. 또한 내가 인내와 용기와 이해심을 갖게 되고, 불가피한 삶의 난관과 문제와 실패에 부딪혀서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결단력을 갖게 되기를..
ㅡ《위빠사나 명상》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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