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가 입멸한 후 제자들이 서로 만나 이견(異見)과 사설(邪說)이 나타나지 않도록 부처의 설법을 암송하면서, 각자 자신이 확실하게 들은 것을 한데 모은것을 일컬어 ‘결집(結集)‘이라고 한다. 제3차 결집은 부처가 입멸하고 이백삼십육 년이 지나서 아육왕이 화씨성에서 거행한 것으로, 목건련자제수를 상좌에모시고 천여 명의 비구를 불러 모아 ‘법장(法藏)‘을 낭송시켰다. 이때 《아함경》을 새롭게 정비하여 전범(典範)을 정하고, 목건련자제수가 《논사(事)를 편찬해서 당시 외도의 각종 사설 (邪說)을 비판했다.
- P28

구마라집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법륜의 회전을 멈추게 하는 것은 맹목적인 사랑을 그치고, 번뇌에서 해탈하고, 모든 근을 안정하게 하고, 생사를 끊는 데에 있습니다. 이 경계에 들어가면 이것이 곧 열반이고 대정(大淸淨)을 얻을수 있습니나, 오도(正道)를 다시 윤회하지 않으면 커다란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경계를 들어가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팔정도(八正道, 팔직도入直道라고도 한다)를 말씀하셨습니다. 정견,정사,정언,정행,정명,정치,정지,정정...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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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풍선을 불어줄게

나는 올라가 붕붕
나른한 오후를 배회해
피아노의 ‘라‘는 무중력을 걷는 발자국 소리
오늘은 구름이 정육면체로 떠다니다 정십이면체로 변하네
그 사이로
물오른 녹;線의 가지를 섞고 있는 버드나무처럼
얽히고;絲  있는 빛의 그물;
나는 비행기야 비행기 -,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 줄 아는 유일한 짐승이지
닥쳐, 커튼과 환풍기가 얘기하고 있잖아
소파는 가재미처럼 누워 있는 게 좋아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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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는 할 말이 많다. 그가 수다스럽게 열정적으로 할말을 다 했으면 좋겠다. 그가 할 말을 다 했을 때,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P25

시인

(막이 내려가기 전에 그는 타이피스트 뒤에 내내 서있다가 타자기에서 원고를 빼내 자기 눈앞에 대고 있던 맹목적인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는 맹목적인 독자의 팔을 잡고 출구로 데려가며 이렇게 말한다.)그런데 말야, 내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내가 자네를 오히려 잉크로 더럽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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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은 나의 문제가 결코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며,
규칙적 규범적인 언어작용의 내부 자체에서 광기의 언어작용이 갖는 기능과 지위의 문제 — 훨씬 더 추상적이고 그만큼 휠씬 덜 흥미로운 문제 — 였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 P48

나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도, 의도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사물들에 대해 말을 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 P57

 우리로부터 먼 곳에있는 사물들을 안정적으로 보여 주는, 허공에 떠다니는, 이 무엇인가에 밀도를 부여하는 일, 그렇다고 우리가 투명한 것으로체험하지는 않는 이 무엇인가에 두께와 밀도를 부여하는 일은그간 나의 변함없는 지속적 주제, 계획을 이루어 왔습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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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불은 별도의 부처님이 아니다. 한 부처님을 어떤 측면에서 보는가에 따라 법신, 보신, 화신이 된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예로 들어보자. 싯다르타 태자가 수행을 통해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을때, 진리와 하나가 됐다는 측면에서는 법신불이다. 싯다르타 태자로서는 수행의 결과로 부처님이 되었으니 보신불이다. 중생으로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그렇게 오신 모습을 보여주셨으니 화신불이다.
한편, 『대승기신론》에는 어느 정도 수행이 된 보살의 마음에 보이는 부처님을 보신이라 한다. 보살은 진여법(眞法)이라는 참된 이치를 깊게 믿어 원만한 공덕을 간직한 부처님의 모습을 조금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지에 이르지 못한 범부에게 보이는 부처님을 응신 (화신)이라 한다. 범부는 바깥 모습에 빠져 부처님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P45

앞서 언급한 몽중가피와 현전가피는 가피가 꿈속이나 현실에서나타나기를 바라기에 범부중생에게는 망상과 집착이 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명훈가피는 중생의 간절함에 대한 부처님과 불보살의 감응(感應)결과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지지만 다만 중생이 느끼지 못할 뿐, 변할수 없는 진리는 항상 불자들 곁에 있다. 이를 깨우쳐 주고자 고암(古庵,
1899~1988) 스님은 1971년 부처님오신날에 조계사에서 다음과 같이말씀하셨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미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 부처님 가피요, 들을 수 있는것, 생각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이처럼 가피는우리가 그 소중함을 잠시 잊고 사는 공기와 같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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