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와 외계인의 조우를 세기말적인 공포와 상실감을 뒤섞어 표현해낸 스릴 넘치는 SF 작품 《삼체》. 과연 《삼체 2부》가 1부와 이어지는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베일을 벗기게 되었다. 1부는 e-book으로 보아서 그 분량을 짐작하지 못했는데, 2부를 들고보니 705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 일단 헉 했다.

삼체 2부는 1부와 이어지는 내용이다. 1부에서 인류는 ETO라는 삼체 문명을 신으로 맞이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 삼체라는 외계문명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부에서 인류는 삼체 문명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시작한다. 인류가 택한 프로젝트는 '면벽 프로젝트'라는 것으로. 삼체 문명에 '기만'과 '계략'이라는 것이 없다는 점, 인류의 모든 행동이 '지자(삼체 문명이 만든 미립자로, 지구에 알려져 있는 모든 물리법칙의 관찰을 방해하고 인류의 모든 행동을 삼체에 실시 보고하는 물질)' 때문에 삼체에게 들통난다는 점 때문에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면벽 프로젝트에서 정해진 면벽자들은 삼체 문명과 싸우기 위한 전략을 생각해내는데 그 의도는 삼체는 물론 UN 등 면벽 프로젝트 책임기관에게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면벽자는 모든 자원 사용에 대한 권한을 가지며 인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빼면 어떤 법적 책임도 피해갈 수 있다. 전 세계인 중 4명이 면벽자로 선택되고, 그 중 하나가 '뤄지' 박사이다. 
1부에서 주인공 '왕먀오'가 삼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2부에서는 뤄지가 삼체 문명의 습격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계략을 짜야한다. 

뤄지 박사는 소설 가장 처음에서 초대 ETO 회장인 예원제에게 '우주사회학'의 창시자가 되도록 영감을 받는 인물이다.  다른 면벽자들은 무기를 개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는 데 반해 뤄지는 면벽자로서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천사같은 아내를 맞이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그 가족은 삼체 문명과 전쟁을 하는 '최후의 날'에 가기 위해 동면에 들어간다. 뤄지는 가족과의 재회를 거래물로 삼아 면벽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의 곁을 호위하는 건 1부에서도 왕먀오를 보호했던 스창이다. 

소설은 한바탕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다. 삼체와 ETO는 왜 다른 세 면벽자의 '진짜' 계획을 간파할 '파벽자'를 3명 임명해놓고, 뤄지에게는 파벽자를 지정하지 않은 것인가. 왜 뤄지가 면벽자가 되었으며, 뤄지의 파벽자는 왜 뤄지 본인인 건가. 예원제가 제시한 '우주사회학'의 기본 개념은 무엇을 말하는가. 왜 삼체는 지구로 날아오는 속도를 늦추었는가. 우주함대를 궤멸시킨 삼체의 '물방울' 탐사기는 왜 '태양'의 파동을 차단하는 것으로 역할을 전환했는가. 이런 수수께끼들이 마지막 순간에 폭발하듯이 모두 해결되는 것이 통쾌했다.  인간 정신과 과학 기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뛰어난 소설적 묘미를 보여주는 결말에 감탄했다. 약 7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속에 담긴 그 많은 디테일함들이 모두 결말 하나를 위해 배치되었던 거라 생각하면 감개무량해진다. 책 초반으로 돌아가 예원제가 뤄지에게 전한 지식(우주 질량의 법칙, 의심의 사슬, 기술 발전), 삼체 문명의 걱정('우주가 암흑의 숲이라는 사실')과 ETO의 사명('면벽자 뤄지를 제거하라')을 다시 읽어보고 이 소설의 큰 맥락을 다시 이해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면벽자 뤄지가 아내, 아이와 함께 초대형 전파기 아래 들판을 뛰놀며 삼체 문명과 지자를 통해 대화 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뤄지가 인류 생명을 위협하는 면벽 계획을 세웠음에도 그가 심판을 사면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점. 삼체 문명이 결국 공존을 위해 인류에게 지식을 전수해줄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것이 삼체 문명이 패한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토대로 인류와 삼체 문명이 암흑의 숲을 함께 헤쳐나갈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까지. 

삼체 1부는 1980년대 중국의 암울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체 2부는 1980년대 이후 뤄지 박사의 세대를 지나 200년의 후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동면 이후 뤄지가 깨어난 세상은 지하 속에 건설된 인공 도시이다. 인류는 지하 인류, 지상인류, 그리고 우주 함대 인류로 구분되었다. 국가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새로운 체계가 유지된다. 어딜 가도 디스플레이가 연결되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단 200년 사이에 일어난 '기술 폭발'이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이 '기술 폭발' 자체가 뤄지의 '우주사회학'의 명제를 증명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모든 장치와 디테일함 속에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대단하게 느껴진다. 

삼체 2부가 1부에 이어 스케일을 점차 확장해 가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1부에서는 외계문명과 처음 접하는 한 인간과 소수 단체를 중점적으로 해서 이야기가 펼쳐졌다. 2부에서는 뤄지를 비롯한 개개인만이 아니라 외계문명과 대적하기 위해 인류 전체가 어떤 시스템 변화를 겪는지 나타난다. 그러곤 우주를 '어두운 숲'에 비유하여 삼체 문명만이 아니라 더 많은 미지의 외계문명이 있을 수 있다고 암시한다. 3부에 가서는 이 미지의 외계문명의 등장을 맞이한 인류와 삼체 문명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 더 큰 스케일에서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