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기 세계신화총서 11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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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단군신화 처럼, 일본에 전해내려오는 신화를 적은 《고시키》. 기리노 나쓰오의 《여신기》는 그 신화 안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소설인 것 같다. 이자나미와 이자나키 부부신의 사랑과 이별의 모습에서 인간의 연애 모습을 똑같이 엿볼 수 있는 소설이었는데. 무슨 우연인 건지, 《K.N의 비극》에서 논해졌던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출산의 부담'이라는 소재가 《여신기》에서도 가장 큰 인상을 주었다. 

이자나미가 말한다.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 낮과 밤, 빛과 어둠, 양과 음 등으로 말이다. 왜 둘로 나뉘었느냐 하면, 하나로는 부족하며 둘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지. 또하나, 만사는 대극이 있기에 더 돋보이며, 서로가 있음으로써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138 p) 그랬건만 자신은 불의 신을 낳다가 죽어 황천국에서 썩은 모습이 되고, 남편인 이자나키는 이자나미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곤 절연을 선언한다. 그러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전국을 돌며 수많은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을 낳는다. 이자나미는 이에 분노해서 하루에 천 명씩, 그 아내들의 목숨을 황천국으로 뺏어온다. 이자나키가 인간이 된 후 이자나미에게 사과를 하는데도 여신 이자나미는 용서하지 않고 황천국 여신의 임무를 계속한다. 신하 나미마가 이자나미에게 이자나미 님의 괴로움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자나미가 대답한다. "여신이라는 사실이다." (307 p) 나미마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끌어안고 있는 것 조차 괴로워 잊고 싶어하는데, 이자나미는 여신인지라 그 배신감을 잊지 않고 여자로서 생명을 계속 죽여야하는 신의 입장이 괴롭다고 한다. "(원한이)사라질 리가 있느냐. 삶의 즐거움을 구가하던 자가 황천국으로 쫓겨난 자의 심정을 알 리 없지. 앞으로도 원망하고 증오하며 죽여갈 것이야." (323 p) 증오와 복수심의 불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은, 이자나미를 닮았다. 

무녀 집안의 나미마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 당해 낳은 딸과 헤어지고 황천국에 와 이자나미를 받들게 된 것. 이자나미가 이자나키와 있었던 일을 혼령 나미마에게 이야기 하는 부분. 나미마가 벌이 되어 인간 세계에 돌아가 배신자 남편을 죽이고 황천국으로 돌아온 일. 불로의 인간인 야키나히코가 된 이자나키가 곳곳을 돌며 미녀들을 아내로 삼다가 생명을 포기하고 이자나미에게 도달하는 부분. 이자나키가 인간으로서 죽고 난 후에도 황천국의 일을 지속하는 야속한 운명의 이자나미와 나미마. 신화와 무녀 신앙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출산과 죽음, 애정에 대해 여러 인물이 보여주는 감정라인. 이야기로서 흥미진진한 건 말할 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출산의 부담을 홀로 지어야 하는 여성의 고통'을 가진 이자나미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 사회과학이 이를 해석하려들기 이전에 이미 일본의 선조도 이런 이치를 알고 있었고, 신화로까지 만들면서 서러운 속을 달래야 했는가보다. 《K.N의 비극》 다음 《여신기》를 순서대로 읽게 된 건, 사고를 연결시키는 가장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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