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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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호평을 자아내는 「13.67」 을 읽고나서 홍콩 작가 찬호께이의 이전 작품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읽었다. 이 제목도 특이한 소설은 제 2회 시마다 소지 추리상 수상작으로 시마다 소지가 21세기형 본격추리소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한 작품이다. 

쉬유이 형사는 한 부부가 집 안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장면을 꿈 속에 보고는 깨어난다. 그것은 그가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둥청 아파트 살인사건의 장면이다. 두통을 느끼며 깨어나 경찰서에 출근해보니 아는 동료들은 모두 없어지고, 심지어 날짜는 둥청 아파트 살인사건이 일어난지 6년이 지난 2009년이다. 그제서야 쉬유이는 자신이 6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기억 상실증에 걸렸단 사실을 깨닫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그 때 경찰서에 '쉬유이 형사와 약속을 하고 왔다'고 말하는 여성 기자 아친이 나타난다. 쉬유이는 둥청 아파트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온 아친과 함께 다니며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들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피해자 유가족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둥청 아파트 살인사건의 모순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설을 읽으며 그 스토리 전개 방법이나 편집 방식이 굉장히 참신한 것은 아니란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이 기억을 회상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하는 장치를 사용한 이전 작품들을 몇 개나 예로 들 수 있다. 굉장히 두껍고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도 아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가 트릭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쓰여져 있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 기억 상실, 해리 등의 소재가 아주 참신하고 생소하여 독자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는 과학적 소재가 아니라는 점이 트릭의 임팩트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인 작가가 정해진 짧은 분량으로 출품하기 위해 쓴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적어도 「13.67」에서 홍콩 사회를  깊능숙히 추리 소설 안에 녹여내는 찬호께이의 필력에 감탄하고 난 후에 읽었을 때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비교적 가벼운 단편이다. 그런 「기억나지 않음, 형사」가 시마다 소지의 격찬을 받으며 당선작이 된 것은 역시 시마다 소지가 말한대로 찬호께이가 '21세기 본격 추리소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찬호께이는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투고하면서 21세기 본격추리 창작의 조건에 대한 글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 조건은 
첫째, 미스테리는 환상성을 갖춰야 한다. 둘째, 새로운 방법론에 기반하여 미스터리를 설계하거나 전통적 관념을 전복시켜야 한다. 셋째, 21세기적 새로운 과학지식으로 작품을 지탱하거나 심지어 그런 과학적 원리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 시마다 소지는 찬호께이가 21세기 추리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그러한 작가의 관점을 그대로 실현시킨 작품이기에 가치가 있다고 극찬하고 있다. 만약 찬호께이의 덧붙이는 글이 없었다면 이 작품이 당선되었을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작가 잔홍즈는 이 책의 환상성, 비현실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나는 잔홍즈나 찬호께이가 의미하는 환상성에서 내가 기대한 환상성을 보지는 못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느끼는 현실의 미세한 오류들에 '환상'이란 단어가 붙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21세기 과학지식으로 작품을 지탱해야 한다는 생각이 「13.67」에서는 "뇌파 장치로 뇌사 환자와 대화한다"라는 설정으로 발전한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13.67」의 시간 역순의 플롯전개나 여운을 남기는 엔딩장면도 새로운 방법론에 기반한다고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여운 있는 엔딩은 」기억나지 않음, 형사」에서도 맛볼 수 있다.) 시마다 소지의 평처럼 '무한대의 재능'이 앞으로 더 기대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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