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화려한 네온 사인이 가득한 시내 거리. 다닥다닥 붙은 기이한 구조의 다세대 빌딩이 즐비한 뒷골목. 홍콩 특유의 도시 색깔을 영화나 관광책에서 볼 기회는 많았지만 문학 작품에서 보기란 드문 일이었다. 중문학이 그다지 많지 들어오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홍콩 작가 찬호 께이가 쓴 「13.67」 이란 형사 소설이 번역 출간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13.67」은 후기가 참 많이도 작성되어 있는데, 직접 읽어보니 '과연 그러하군' 하고 이해가 되었다.

「13.67」는 주인공인 형사 관전둬의 형사의 수사극을 역시간 순으로 쓴 소설이다. 관전둬는 영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천재적인 추리 능력을 보여주며 승진을 거듭한 천재 탐정으로, '천리안 관전둬'라고 불린다. 이야기는 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는 관전둬에게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뤄 샤오밍 독찰이 사건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몸이 성치 않은 형사의 모습은 마치 '본 콜렉터'에서 덴젤 워싱턴이 연기한 링컨 라임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독특한 '핸디캡'을 가지고 있어 더욱 범상치 않은 천재 탐정 캐릭터가 등장한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역시간 순으로 쓰여져 있어 뒤로 갈 수록 관전둬는 젊어지는데, 이러한 구성이 '천리안 관전둬'라는 인물의 천재성과 비범함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작가의 의도는 추리소설 속에 홍콩 사회 자체를 녹이고 싶어서 중요 정치적 사건이 있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이라 한다.)

이 소설은 '홍콩이기에 가능한' 형사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홍콩 삼합회, 마피아 조직, 대부호, 마약상, 부패 경찰 등 홍콩 느와르 물을 연상시키는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한 부정과 부패가 돈이로 모두 인정되고마는 홍콩 사회에 있어서 정의롭고 융통성 까지 갖춘 관전둬의 모습은 마치 '영웅'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비열한 범죄자들은 천재적 추리 능력과 가차없는 카리스마로 대치하고, 동료 경찰들은 강인하고도 부드러운 인성으로 독려해준다. 인재를 알아보고 아군에게 빚을 지게 하는 그는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의 정의로운 심성과 '아이언맨'의 유머와 모험가 기질을 갖춘 노련한 형사라고 하겠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신비로운 홍콩 권력 세계, 뒷 세계에 대해 읽다보니 홍콩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 '나라'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추리 소설이 있었던가? 홍콩의 독립 등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홍콩 사회에 대한 작가의 노련한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데, 단지 그런 사회파 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추리 소설 그 자체로서의 철두철미한 구성력도 잘 갖추고 있는 소설이었다. 자칫 "이런 전개는 너무 넌센스한데?" 하고 생각되었던 것 조차 심지어는 사건에 있어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또 인물의 심리상태에 근거해 사건의 근거를 추리해내는 과정들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아, 최근 읽은 추리 소설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강한 것 처럼 생각되었다. 

평론가들의 평을 보면 "정치, 사회적으로 격변을 겪어온 홍콩과 그 속에서 경찰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란 말이 나온다. 사회파 소설이면서도 정통 추리소설의 요소를 고루 갖춘 이야기. 홍콩이기에 가능했고, 홍콩에 대해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제목이 「13.67」이 아니라 「67.13」이었다면 후속작을 기대해봤을 수도 있을텐데. 찬호께이의 다른 작품을 통해 작가의 매력을 좀 더 느끼는 수 밖에는 없겠구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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