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키의 해체 원인 스토리콜렉터 31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탐정이 트릭의 구조를 파헤치는 과정을 구분 지을 때, 사건 정황에 따라 트릭을 유추하는지 아니면 인물 감정선에 따라 유추하는지로 구분지을 수가 있다. 「치아키의 해체 원인」은 후자에 해당한다. 주인공 치아키는 평범한 청년인데 단순히 취미처럼 매스컴에 보도된 토막 살인사건에 대해 가설을 세운다. 치아키의 독특한 취미(?) 때문에 주변 동료들은 그를 탐정처럼 여기며 다양한 토막 살인사건을 그에게 들려주고 가설을 들려달라고 한다.



첫 장 <제 1인 해체 신속>에서 치아키가 토막(해체)의 원인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범인이 이미 잡혀 사건이 종결된 시점에서 치아키는 "구태여 시체를 해체해야했던 이유가 뭘까"하고 호기심을 보인다. 토막을 내는 이유로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운반의 용이성'이다. 하지만 만약 <치아키의 해체 원인>에 나오는 수 많은 토막 살인 사건들이 다 시체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면 이 소설은 <해체 원인>이란 제목을 붙일 이유도 없었을 거다. 일반사람들이라면 생각하지 못할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치아키는 가설을 세운다. 토막을 낼 수 밖에 없는 기상천외한 이유에 대해서. 이제까지의 소설들이 하나의 토막살인을 놓고 토막의 원인을 밝히려고 했다면 <치아키의 해체 원인>은 "자, 왜 토막냈게요?" 하는 퀴즈의 향연이란 느낌이다. 기발하고 재미있다. (규칙위반이 한 번 나오긴 해도). 

인상적인 건 작가가 살인범의 심리상태를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다. "범죄를 저지를 때, 인간은 그 누구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기묘한 공포에 사로잡힌다고 해도, 그건 정신이상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심리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극한 상황에 빠졌을 때, 평범한 신경이 체험하는 비일상성이라고 할까요. (page 286)"  엽기적 살인행위를 벌인 사람은 정신이상자 싸이코패스일 거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꼬집는 이 대사는 <치아키의 해체 원인>의 주제를 꿰뚫는다. 주인공 치아키는 범인의 동기를 파헤치면서 이를 보여주는 역할이다. 

편집 과정은 두서가 없기 때문에 읽는 데 불편한 감이 없지 않다. 1장부터 8장까지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인 단편극이 나오는데, 처음엔 치아키의 탐정노트인가 싶었건만 각 단편마다 등장인물이 다 다르고, 그 와중에 이름은 또 비슷해서 헷갈리게 하는 요소가 많다. 그러다가 제 8장에서 희곡이 나올 때는 이 소설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워진다. 각 단편에 나오는 토막 살인사건들도 어딘가 묘하게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장치 되어 있어, 다음 장을 읽을 때 영향을 준다. 결국 마지막 장 <최종인 해체 순로>에 가서야 <치아키의 해체 원인>의 세계가 분명해진다. 그리고 중간에 뜬금없이 끼어있던 희곡의 역할도 분명해진다. 깨나 애먹이는 소설인데, 마지막까지 읽지 않았다면 노력도 보상받지 못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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