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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청춘이란 무엇인가 - 방황하고 사색하고, 아프니까 사랑이다
헤르만 헤세 지음, 서상원 엮음 / 스타북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노년기에 스위스의 한 한적한 마을에 자리잡아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때로는 그림을 그리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헤세.
그가 지난 날의 개인 역사와 당시의 심정, 그리고 현재의 조용한 삶에 대해 간략히 고백하며 이 책은 시작된다.
영광의 시기를 누리다가 작가정신을 가진채 전쟁 시기를 겪고,
국민들로부터 배반자라 비난받았던 일.
그의 젊은 날은 그런 자기 고뇌와 투쟁의 시기였음을.
그래서 노년기에 그가 느끼는 젊은 날에 대한 회상의 감정에 우리가
귀기울일 가치가 있음을 알리는 그런 시작이었다.
그렇게 사랑과 청춘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이
소설처럼, 또는 에세이처럼, 시처럼 이 책 안에 담겨있었다.
남성적인 힘이 차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낭만주의가 물씬 느껴지는
그의 글들을 읽다보니
그가 글 속에 표현한 감정들이 몇가지 메세지가 되어 읽혀졌다.

권력과 부를 얻는 것도 지나가버린 사랑보다 값지지 않고,
그 권력과 부를 잃는 것도 사랑의 시기를 잃는 것 보다 더 괴롭지 않다는 메세지.
그 어떤 일도 한 순간에 사랑을 갈망하는 것보다도
더 인간의 영혼을 이끄는 일은 없다는 걸.
때로는 사랑의 감정이 넘쳐나도 인생의 여정은 불안하여
인간을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더 먼 곳에서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이해불가한 마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어떨땐 찰나의 망설임으로 인해 거부한 감정이 한참동안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도.
굳이 직적접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야기 속에서 전해지는 이런 자조적인 감상들은
헤세의 글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헤세의 글은 단 하나의 감정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또 인생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두고 이야기하면서도
희로애락이 여기저기서 뒤섞여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또한 가족, 연인, 친구, 적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한 감정을 자극해낸다.
문장과 글 속에 그런 다양한 생각들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헤세라는 걸 또 다시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노년 시절을 보내며 유유히 방랑을 즐기는 때에
일상 속에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추억을 글로 옮기는 헤세의 모습을 그려본다.
스위스 마을에 살 당시의 헤세의 나이에 가까워지지도 않은 내가 느끼기에도,
지나간 추억을 전부 그러 모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데,
노년기가 되면 얼마나 더 가슴과 뇌가 태워질까 하면서.
"꽃은 아름다워라 그러나 더 아름다운 것은 젊음을 가진 사람이어라"

헤세는 젊음과 아름다움도 언젠간 늙어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슬퍼지고 만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꽃을 이쁘다고 찬양하는 게 아니라 그 꽃도 언젠간
시들어져 버릴 거라고 하는 것이
젊음의 가치를 더욱 더 도드라져 보이게 만든다.
체험에 의해 나온 말인데도 단지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책 속에서 계속 여행하고 방랑하는 남자를 계속 걷게 하는 원동력은 '젊은 날의 연애'를 추억하는 것이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대사에서도 그랬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날이기에 아름다운 거라고.
노희경 작가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그러고보니 나는 어쩌면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막연히 믿으면서
시간을 동일한 일상 속에 호치키스 심 찍듯이 박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하고 자책한다.
어찌되었든 헤세는 한 때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가졌었고 친
구들에 둘러싸여 있기도 했었지만
말년의 그는 작은 한 마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사색하는
노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정착이라기 보다는 방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일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고요한 정취를 풍긴다.
유랑시인인 그가 글 속에서 "인생의 길에서 모두가 혼자다" 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곤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인생에 대한 그의 자세는 너무나도 주체적인 듯 보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방주를 탄 노아처럼 변화가 없는
자아의 섬 속에 갇혀 일생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삶이란 하루하루 삶의 매 순간을 날카롭게 살펴
참된 삶 속에 '실존하는 순간'을 찾게 된다."
그리고 상상과 사색, 고찰이 쉬지않고 그를 깨우고 있었다는 걸.........
그의 글을 읽는 나 역시 깨어있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