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보기 좋은 날 - 내 가방 속 아주 특별한 미술관
이소영 지음 / 슬로래빗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의 미술시간의 90%는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거나, 그리거나 하는 실기시간으로 채워져있었다. 나머지 10%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대비하여 벼락치기 식으로 미술사를 주입시키는 시간들이었다. 인상파, 낭만파 등등, 암기식으로 미술을 대해왔으니, 미술이 다 뭐다냐, 미술작품이 다 뭐다냐. 미술과목 같은 실기과목이 입시열풍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쓴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미술시간이 그렇다고 해서 지켜져야 한다고 옹호해줄 만큼 질적으로 충만했던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그건 주입식이었고, 실기작품을 내놓아야 점수가 매겨지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를 못했으니까. 결국 미술작품과 작품대 감상자로서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 작품을 통해 작가와 감상자가 되어 교감할 기회 또한 당연히 없없던 것 같다.


내 주변엔 어찌저찌해서 미술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왠지 그들 사이에 껴있으면 나만 이질적인 것 처럼 느껴져 미술, 디자인 이런 것들을 더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내게 이론적인 것들은 사실은 지루하고 낯설다. 그래서 가까이하지도 멀리하지도 못하고 있는 '미술'이라는 것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해준 책이 있다. 그게 「출근 길 명화 한 점」이었다.

 

「출근 길 명화 한 점」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라는 것을 알려준 책이다. 이 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람의 변화하는 기분에 따라 감상하면 좋을 그림들을 싣고 소개한 작품인데,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보는 사람의 요일별 감정과 공명 함으로써 감성 넘치게 그림을 보는 방법을 알려준 그런 책이었다. 이번에 나온 「명화 보기 좋은 날」은 「출근 길 명화 한 점」의 후작이다. 「출근 길 명화 한 점」의 제목이 '시간'+'그림'의 순서인 것과, 「명화 보기 좋은 날」의 제목이 '그림'+'시간'의 순서인 것. 별 것 아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발견.

 

이번「명화 보기 좋은 날」의 테마는 '감정'이다. 책을 구성하는 다음의 part들만 보아도 느낌이 오지 않는가.

Part 1. 마음이 피곤한 날에 Part 2. 열정을 찾고 싶은 날에 Part 3. 누군가 그리운 날에
Part 4. 자신감이 필요한 날에 Part 5. 혼자 있고 싶은 날에 Part 6. 사랑하고 싶은 날에
Part 7. 감성을 키우고 싶은 날에


동일한 감정선상에서 보기 좋은 그림들이 소개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출근길 명화 한 점」에 이어 「명화 보기 좋은 날」을 읽고 드는 생각은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본문의 내용보다도 먼저 실려있는 그림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기서 '무언가를' 느껴보려고 애쓰고 있는 나를 보면서, "참 감수성 없다." 하고 새삼 느끼게 됐다.

그러고나서 본문을 보면서 저자가 그림과 어떻게 교감했는지를 생각해봤다. 저자는 나이를 먹고 그림을 알게되면서 점점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 감정들을 솔직하고 따뜻한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냈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림을 읽는 데에도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가 필요한 거였다. 이 두 책을 읽고나서 이제서야 그림을 '읽어주는 데'있어서 화자의 감수성과, 또 그것을 맛있게 풀어내는 문장력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가 느끼게 되었다. 그림과 글이 만난 인문학의 장이 공감력을 이끌고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 그 위력을 한 권의 책 안에서 발견한다. 멋진 시도이고, 가치있는 도전이다.

"일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순간은 제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게 하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하며, 미래의 나를 꿈꾸게 합니다. (저자.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그림 초짜인 사람한테 그림과 친근해지고 일상에서 그림을 즐길 수 있는 법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실려있는 작품을 만든 작가의 배경이나 작품 탄생 비화 등의 지식도 무겁지 않게 들려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게도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들은 아래와 같다. 아래의 작품들이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 자체가, 나를 규정짓고, 나의 본질을 어느 정도 설명해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 '감상'이 가지는 의미는 또한 그런 것이기도 한가보다.

 

클로드 모네. 루엘 풍경. 1858.


모네의 루엘 풍경은 저자의 말처럼 사진을 보는 것 같이 매끄러운 묘사력이 감탄스러운 작품이다. 굉장히 깊고 성숙한 듯 보이는 그림이지만, 인상파 화가 모네가 18살 청소년 시절에 그린 그림이라고 하니 왜인지 풋사과가 연상되는 그림이다. 저자는 이 그림을 소개하면서 누구나 스타트업 시기엔 개성을 찾기 어렵지만 노력과 열정이 차츰 쌓여 자신만의 개성이 확고해질 날이 올 것이라고 격려하는 문장까지 덧붙여 놓았다.

 

에드먼드 찰스 타벨. 나의 가족, 코튀트에서. My family at Cotuit. 1900.


고흐가 해바라기 그리기를 좋아했던 것에서 보이듯, 작가들은 어떤 하나의 소재에 애정을 갖고 거듭해서 작품으로 창조해내곤 한다. 에드먼드에게는 그 소재가 가족이었다고 한다.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는 것도, 창작을 해야 하는 이유도 가족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족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으려 한 에드먼드에게서 애정과 애환이 느껴진다.

 

애니쉬 카푸어, 클라우드 게이트 Cloud Gate. 2006.

이 작품을 처음 본 건 영화 '소스코드'의 한 장면이다. 소스코드에서 주연 제이크 질렌할이 이 클라우드 게이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작품에 그를 촬영하고 있을 카메라가 비치지 않는다. 영화 촬영 후 편집을 해서 없앤 걸까, 아니면 금속면의 굴곡이 카메라맨을 교묘히 화면 밖으로 밀어낸 것일까. 실제로 클라우드 게이트 앞에 서본 일이 없으니, 아직도 그건 내게 미스터리다. 만일 시카고 도심에 설치된 이 구름문을 실제로 볼 기회가 생긴다면, 금속면에 반사된 카메라 들이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반드시 사진으로 남기고 말겠지.

 

 

 

앨리자베스 키스. 새해 첫 나들이. New years Sopphing, Seoul. 1921.


동양의 아름다운 세계를 만끽하고 싶다는 열정을 갖고 있던 앨리자베스라고 하는 젊은 여성이 1920년 초기 식민지 시기의 한국을 찾아 그 아름다움에 반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물, 일상적인 풍경들은 심플하면서도 알록달록한 화폭에 담아낸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일본의 괴담을 유려한 문장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던 서양인 라프카디오 헌의 문학작품들이 생각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양의 모습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을 전해준다. 있던 것도 다시 되돌아보게 하고 가치를 재조명하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동양인이 표현하는 서양세계도 그들에게 그런 묘한 느낌으로 느껴지는 거려나.

책 안에서 가장 나에게 울림을 준 사람은 다름아닌 헤르만 헤세이다. 나는 이미 「수레 바퀴 아래서」로 인해 그에게 절대적인 영혼의 지지를 보내고 있는 팬이기도 했다만. 책에 실린 그가 했다는 말이 나를 또 다시 흔들었다.


"내가 화가가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상세계에 몰두한 가운데 나 자신을

까맣게 잊게 된다는 것은 특이한 체험입니다.

여러 날 동안 나 자신과 세상을 잊고 전쟁과 다른 모든 것을

완전하게 잊었던 것은 1914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알프레트 슐랭커에게 보낸 편지, 「화가 헤세」 중에서)



 

헤세의 문장은 체념도 아니고, 절망도 아닌,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마음인 것 같다.그런가. 나도 내가 이제와서 미술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즐기고, 그것에서 의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괜찮다는 것을 헤세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됐다. 왠지 목구멍에 무언가 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저 문장이 내게 전달해준다.

마지막으로. 「출근 길 명화 한 점」과 「명화 보기 좋은 날」 두 책 모두에 실린 작품이 있지 않은지 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다.같은 그림을 두고 어떤 글이 오고갔을까. 어떤 테마가 되었든 그림 읽고 싶은 날에 꺼내어 그림과 글의 힘을 느껴보는 시간을 자주 갖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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