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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가문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역사를 바라보는 시바 료타로 앞에 드러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주 좀스럽고 닫힌 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나라 미카와의 기질과 규범이 그랬다. 이에야스는 그런 기질을 조장하고 권장하였다. 그런 가문의 규범이 오랜 세월 일본을 다스렸다. 그 세월은 평화로웠으나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을 억압하여 안으로 안으로만 움츠러들게 했다. <패왕의 가문>은 그런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이기도 하고,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인물들이 보여준 개방적이고 진취적 기질의 패퇴를 안타까워하는 글이기도 하다.
(역자 양억관. 2012년 10월)」
시바 료타로는 소설을 쓰는 처음에 도쿠가와 가가 간직했던 극단적 자기보존 정신과, 그의 권력적 사고법이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소설에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다. 결국 소설은 이에야스가 죽은 시점에서 끝이 나게 됐지만 처음의 마음을 담아 <패왕의 가문>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그게 다소 역설적인 제목이 되었지 모르겠다고 평한다. (1973년 10월)
시바 료타로 선생이 그런 생각으로 제목을 지었다는 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고, 제목에 대한 내 감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천하의 주군 이에야스가 주인공인 <패왕의 가문> 속에선 물론 많은 가문들이 나온다. 이에야스가 존경한 다케다 신겐, 우호적으로 생각한 오다 노부나가, 천재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가신들은 물론 이런 천하의 무장들, 그들의 가신까지. 많은 인물들의 '집안 이야기'가 소설 안에서 다루어진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어느 인물의 생애, 가문 이야기가 소설 전개를 방해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서술 방식 덕분에 하나의 단편 소설 안에서 그렇게나 많은 가문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역시나 시바료타로 소설의 매력은 요즘 말로 '로비 활동' 서술에 있는 것 같다. 긴장감 넘치는 전투 장면 서술도 재미있지만 앉아서 벌이는 두뇌 싸움, 로비, 공작, 동맹과 배신, 스파이 활동 등등을 읽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나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반역을 당하던 그 때에 이에야스는 오다의 초대로 관서 산기슭의 아름다운 자연을 한가로이 만끽하고 있었던 이야기에 대한 서술이 매우 흥미로웠다. 오다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낯선 땅에서 이에야스는 사생결단을 매우 호탕하게 내려 버린다. 그야말로 이에야스 다운 면모가 거기에서 드러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아쉽게도 전투와 관련된 역학적 이야기는 이에야스가 오다 노부가쓰와 동맹을 맺고 히데요시를 치기 위해 치렀던 전투에서 거의 끝이 나있다. 그것도 '나가쿠테 전투(히데요시의 기습군이 '가르기 전법'으로 전투지가 아닌 비어있는 이에야스의 본토성을 치려고 기습했다가 패한 전투)'를 밀도있게 소개한 데에 비해, 노부가쓰의 배신과, 인질 교환 등으로 이어진 묘한 관계 정리 부분은 다소 김이 새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고는 전국 시대의 가장 큰 전쟁인 '세키가하라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바로 이에야스의 말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니 더욱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신흥 세력 무장으로서는 다테 마사무네가 마지막에 잠깐 등장한 것이 전부이다.
시바 료타로의 역사의식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호방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 좋게 평하가진 않은 듯 하다. 그런가하면 신으로 추앙받은 오다 노부나가에 대해서도 그렇게 찬란한 수식어를 동원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점을 보면 이에야스에 대해서는 중립적이지 않은 서술을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사실은 전국 시대의 마무리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더더욱 신흥세력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읽었지만 이에야스 시대의 전반적 흐름에 대해서 얕게 나마 알게 된 것 같아 그런대로 만족했다. 역시 정말 더 알고 싶다면 그의 장편 소설에 도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