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결함 1
이치은 지음 / 픽션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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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로봇의 결함에 대해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신고자들 중 많은 분들이 로봇의 이상행동을 인지해도 그걸 과연 신고할 만한 결함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 헛갈려 할 때가 많다고. 그런 경우는 십중팔구 로봇이 아니라 인간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하셨죠. 그 말씀이 유독 기억에 남네요. 인간에게는 결함이 아니더라도 로봇에겐 결함일 수 있다.”. 4p.45

 

소설을 다 보고 나니 주 화자의 이름이 이미 적혀있었는데 뒤늦게 알았다. 랩에 포장된 이 책을 첨 손에 들었던 날 금방이라도 다 볼 것 같았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다시 1권부터 보기 시작했지만 시리즈의 첫 시작이 좋았기에 다시 보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5권의 제목이 모두 같은데도 이 이야기들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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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뜨거운 모래사장 위에 완벽한 자세로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에 쏟아진 흑진주 알처럼 반짝이는 빛의 모습이 곧 조라의 눈동자의 모습이었을까. 그저 뒷모습만 그리고 우아하게 돌아보는 모습만 적혀있을 뿐인데 해안 인명 구조 로봇인 조라는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하는 로봇에게 물어보고 싶고, 궁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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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구연 로봇 바셀미가 읽어준 세익스피어의 소설은 어쩌면 어른보다 아이의 귀에 더 잘 들렸을까? 그 대목을 보는 순간 어른인 나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내가 얼마나 다른 세계를 사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데. 바셀미. 내게 필요한 로봇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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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말에 귀엽게 대답하고 어떤 질문을 해도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네요가 아닌 자연스런 대화를 이어나가는 롱공의 그 틀리지 않은 예감. 그리고 거위의 꿈이 아닌 물류센터 로봇, ‘양생의 꿈. 그리고 작가님은 이렇게 너희들의 이름을 멋지게 찾아냈는데, 이름은 짓는 옵스트로부터 뻗어나간 그 이름들은 무의미가 의미가 되는 그런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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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파고 가 아닌 아로푸’, 최선을 다할 상황보다 환경이 더 중요한 거였을까. 그래도 할머니가 말한 최선에 대한 이야기는 최선이란 그런거지만 날카로운 적의가 포함된 최선은 사양해요. 라는 것을 다시 새삼 새겨본다. 그리고 배우를 닮은 교통 경찰 포그’.. 다 맘에 들었지만, ‘포그편이 많이 기억에 남았다. 그것이 트라우마 이야기였을 수도, 잠수에 관련된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도움없이 홀로 이겨내는 듯한 그 모습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속에서는 오래전 하루키의 소설에서 등장했던, 마음속의 동토(凍土)가 느껴져서인지 좀 많이 슬펐다는. 그리고 복사가 되고 싶었던 높이 뛰기를 하던 바심’, 되고 싶은 것이 있었던 바심. 아니 어쩌면 신을 섬기고 싶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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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커 챔피언 로봇 민수는 정말 포커페이스의 최강자. 도박사 마저도 도무지 모르게 만드는. 나처럼 좋고 싫은 게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은...민수야. 나한테 좀 가르쳐 오. 그리고 좀처럼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것 같은 비행기 경첩 설계자 토로욧로봇이라서 딜레마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는, 소위 말하는 행함에서, 혹은 행하지 않음으로서 지켜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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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호텔 객실 담당 청소 로봇 유춘’. 무언가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맘에 드는 결말.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기계적 결함을 발견하지 못한 채 만든 간병인 로봇 헨리의 결함은 누구의 결함일까. 그리고 마지막 로봇의 결함을 신고하는 로봇 끼릴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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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한 로봇들은 그 모양과 생김이 어떠하든 내게는 이성을 뒤흔드는 감정이 아닌, 차분한 이성에 온기를 머금은 그런 로봇들처럼 여겨져서 이야기 자체에 많이 빠져 읽었다. 소설의 첫 페이지에 실려 있던 인용 문구의 낙담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 같은 그들이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서 행하는 그런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언급하지 못한 단편들도 있지만 이 소설들은 무언가 분석하고 분해하기보다 로봇들에게 마음을 기대하며 읽었다. 아 물론 로봇에만 마음이 빼앗겼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화자, 베아투. 영혼을 담보로 잡히지 않은 것 같은 그 관청 직원 덕분에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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