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작가 - 존 버거의 생애와 작업
조슈아 스펄링 지음, 장호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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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만난 존 버거의 책은 ‘벤투의 스케치북’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밀도 높은 문장들을 보며 머리속에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환기를 일으켜준 덕분에 전작수집을 희망하는 작가 중 한명이 되었다. 그후로 장 모르가 찍은 오십년 우정의 풍경 ‘존버거의 초상’을 보았기에, 그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모른 채 마지막 모습만으로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존 버거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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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작가는 비교문학과 미디어 이론을 전공한 미국인 조슈아 스펄링이 쓴 존버거에 대한 생애와 작업에 대한 글이다. 일반적인 전기처럼 그의 일대기를 시간적으로나 면면의 모두를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 존버거가 떠난 지금 이 책은 그의 생애와 활동을 돌아보고 비평가로서의 면모 뿐만이 아니라 예술가, 각본가, 소설가, 그리고 이모든 글쓰기와 사유의 방식을 통해 그의 생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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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미술사학자였던 케네스 클라크와 함께 방송에 출현하면서 기존의 미술 비평에 대한 전문가적 위치를 비판하고 다른방식으로 해석했던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단지 ‘다른방식’이라는 용어 뿐이었다.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되고 존버거 생에 가장 널리 알려진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책을 보고 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어떤식으로 예술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지 그 배경을 잘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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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없고, 예술은 철저히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존 버거의 시각은 동시대적인것, 구체적인것, 흔한 것을 강조하였기에 추상미술에 대한 그의 공격은 매우 신랄하다. 특히 그는 예술이 이데올로기 혹은 상업자본주의와 결합되어 변질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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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부커상을 받은 [G]외에도 그의 첫 소설인 [우리시대의 화가]에 대한 배경과 이야기,그리고 당시 영국을 떠나던 버거의 상황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이후에는 존버거가 장모르를 만나 완벽한 협업의 순간으로 탄생하게 된 [행운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과정에서 이 글을 쓰는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가 이전에 존버거와의 작은 인연을 책 속에서 소개를 하긴 하였는데 정확히 그 이후 두사람의 관계까지는 잘 모른다. 다만 8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참고문헌은 그가 이 책을 쓰는 과정이 박사 논문을 쓰듯 상당한 공을 들인 책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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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챕터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잘 들려주는데 아마도 내가 이 책을 보지 않고 [G]를 읽었다면 나는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화가]역시 요근래 접했던 헝가리의 혁명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이 두 소설에서 버거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비평가들의 목소리 이전, 그의 생각을 먼저 알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이 나왔을때 부터 사야지 했지만 당장에 읽을 것 같지 않아 바로 데려오진 않았다. 마침 후배가 도서관에 갔다가 들고 온 것인데 존 버거의 책을 어느 정도 본뒤 재독을 반드시 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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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는 비록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절반가까이를 스위스에서 지냈다. 그가 그간 갖고 있었던 사상, 신문과 방송을 통한 활약, 사회주의자로서 세계의 변화가 점차 암흑의 시대로 들어갈 즈음 모든 활동을 접고 시골로 들어가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와 어깨를 함께 했던 수전 손택마저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그는 다시 글쓰기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생애 긴 시간을 그렇게 노동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그가 말한 구체적인 예술에 대해 다시금 농민들의 삶을 살아가면서 나온 작품들은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내게도 그의 작품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나서 눈에 잘 보이는 곳으로 갖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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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처음부터 명성을 잃은 적이 없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명성 뒤에 숱한 공격과 따가운 시선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써준 작가에게 너무 고마웠다. 뭐라고 할까.. 버거의 글에 가장 어울리는 그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할까. 책 전체가 좋으면 리뷰를 쓰기가 너무 어렵다. 며칠 묵혀 생각좀 하고 쓸까 했는데 그럼 영영 못쓸거 같았다. 전달이 부족하니 꼭 책으로 만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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