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량의 방사능이든 맹독성 낙진이든, 그 어떤 재해도 인간만큼 파멸적이지 않다. 재해는 오히려 지상 최대의 재난인 인간이떠나가게 하여 동식물의 낙원을 되돌리곤 한다.
"저 위의 주민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제 세상이 조금은 좋아지려나요? 흙 위를 뒤덮은 괴물들이 지금 다 사라지고 나면, 썩지 않는 것을 먹고 죽는 아이들도, 그런 것에 목이 감겨 살이 짓물러가며 죽는 아이들도 사라지려나요?"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 맨정신에, 취기 없이.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