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는 자원일까요, 자원이 아닐까요? 물이 커먼즈라면 우리는 왜 그것을 얻기 위해 돈을 내야하죠? 갯벌이 커먼즈라면수많은 미생물과 동식물, 어부의 삶의 터전이던 새만금 갯벌엔왜, 누구의 의지로 방조제가 들어서고 물길이 끊겼을까요? 무엇보다 커먼즈를 우리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요?
저 말을 한 혀가 잘리고 저 말을 하는 데 필요했던 목과 폐, 그리고저 말을 강조하는 데 쓰였던 손까지 순서대로 절단됩니다.
좋은 문학이란 불안한 현실의 첨예한 모순을 빼어난 상징과 은유로 고발하면서, 동시에 소설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숙명을압축하는 글이 아니던가요. 한 시대를 작동시키는 정신의 심장을 차가운 메스로 도려내면서, 모든 시대의 살갗에 접촉하며 불에 덴 듯한 뜨거움을 주는 문학이야말로 참된 문학일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포장지 없는 날것으로 우리에게 비극을 보여주지만 소설이 그 날것을 거울처럼 옮겨 적는 일은 늘 불허되었습니다. 토니 모리슨의 글은 그 날것을 바라보게 해주는 창窓과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