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집중해봐.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지막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인회 언니 목소리는 마치 명상수련가사의 것 같았다. 언니가 글자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아이의 눈빛으로 메뉴판을 골똘히 들여다봤으므로 나도 덩달아 골똘해졌다.
자아분열이 유발하는 두려움과 무지, 그로부터 올라오는 수치심, 수의처럼 우리를 뒤덮어 말려 죽이는 그 미스터리는 항상,언제나 문학의 관건이었다. 그리고 또한 좋은 책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 글에 암묵적으로 내재하는 그 힘의 원천을 알게되었다. 그 힘은 산문의 신경 어딘가에 붙들려 담겨 있다.
이 책은 해야만 했던 말을 다 한 걸까?나는 여전히 대문자로 시작하는 Life,‘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릴라는 내가 고등학교에 가기도 전에 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한건가? 나는 공부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름 방학동안에 혼자서 공부했단 말인가? 릴라는 왜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나보다 빨리, 나보다 더 잘하는 걸까. 내가 따라가면 도망가면서 정작 자신은 언제나 내 뒤를 쫓아와 나보다 앞서나가려 하는 걸까.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