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는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비롯되었다. 정확하게는 한때 과일이었던 것. 수명이 다한것, 분해되어 형태와 본질을 잃고 일부 흔적만이 자기가 왕년에는 그 무엇 또는 그 누구였음을 강력히 그러나 사뭇 안쓰럽게 주장하는 유기화합물에 대한 시선의 발아는.
하지만 삶이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다. 삶이 우리를 끌고 다닌다.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목적을 향해 우리를 이끌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쫓아가게 만든다.
30년 전 어느 저녁, 역사가 주목하지도 않고,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으며, 오로지 나만기억하는 그 순간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녀는 두 개의 손 안에 한 세상을 움켜쥐고 부숴버린다. 세상은 불과 한 번의 총성으로 인해, 짓무른 과일처럼 간단히 부서진다. 그 파열음이 벼락처럼 귓전을 갈기지만 그녀는 소리에무너지지 않는다. 눈앞이 맵다. 이걸로 그 무엇도 돌이킬 수 없고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
자신의 말이 혹 옳다 여길지라도 그저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며 망설인 채 말을 삼킨다. 그리고 그 주저와 짐작 사이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품위와 배려가 있다. 요즘 그런 것을 자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 순간에 더 위안을 받았다는 점도 때론 챗지피티의 지적이고 신속한 조언보다 내 앞에 선 인간의 두박한 침묵이 많은 말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