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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종말론적 신비주의자 중세르네상스연구소 연구시리즈 1
주경철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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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콜럼부스 다시보기.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다시보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원 자료를 만나는 기분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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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난민 되다 - 미스핏츠, 동아시아 청년 주거 탐사 르포르타주
미스핏츠 지음 / 코난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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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가운데서 손을 옆으로 쭉 뻗으면 양 손톱에 벽이 닿는다.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두 손을 머리 위로 들면 팔을 다 펴기도 전에 벽에 손이 부딪힌다. 나는 월 19만 원짜리 고시원의 방 크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스물여섯에 ‘3개월 안에 나갈 거다’면서 들어온 이 ‘방’은 26개월 동안 나의 ‘집’이었다. 침대와 책상을 제외한 바닥에 신문지 2장만 펼치면 장판이 보이지 않는 좁디좁은 방이었지만 나는 적응해갔다. 특히 짐들을 수납하는 요령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두 번의 4계절을 보내게 되니 옷이 골칫거리였는데 방이 곧 집이니 해결도 안에서 어떻게든 해야 했다. 나는 원래대로라면 천장과 바닥에 세로로 봉을 압착시키는 행어를 침대 위로 가로로 설치했다. 옷 무게 때문에 행어가 떨어질 걱정을 했지만 길이가 짧으니 그런 일은 발생치 않았다. 고로 나는 옷들의 끝자락을 바라보면서 26개월간 잠을 잤다. 이때 얻은 ‘원인을 모를 리 없는’ 피부병은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바라던 것 중 일부를 ‘포기’하게 되는 거다.” (126p)

 

다세대 주택에 산 적이 있었다. 그 곳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해 있었지만 국가와 지자체의 법적효력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 1층에 사는 주인이 곧 법이었다. 나는 주인을 ‘응암동 마귀할멈’이라 (몰래) 불렀는데, 그녀는 한국에서 집주인이 어디까지 ‘갑’일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세입자의 집에 마음대로 들락날락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내 앞집에 살던 자매들은 보일러 수리요구를 ‘버릇없게’ 말했다는 이유로, 윗집에 살던 신혼부부는 벽에 못을 ‘허락 없이’ 박았다고 쫓겨났다.

 

“집은 엄연히 사적인 영역이다. 사적 영역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때라야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온전히 쉬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선 많은 집주인이 이런 룰을 초월하여 지위를 남용한다.” (269p)

 

황당한 일화도 있다. 입주를 하고나니 창문에 방충망이 없었다. 그래서 요구를 하니 달긴 달아주었는데 그것은 ‘미닫이 방충창문’이 아니었다. 철물점에 파는 커다란 망을 창문 전체 사이즈로 잘라 창틀에 접착제로 부착하고는 주인은 ‘관리 잘 해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창문을 열어 바깥으로 손 한번 내밀지 못하면서 2년을 살았다. 그리고 이사하는 날, 창문 쪽으로 사다리를 이용해야해서 어쩔 수 없이 방충망을 찢었는데 주인은 ‘창문 다 망가트려 놓았다’면서 내게 비용을 청구했다. 이때 얻은 ‘원인이 확실한’ 트라우마는 나의 세입자 생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나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보다 ‘주인을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못 하나 박는 것도 혹시나 트집 잡힐까봐 조심스럽다. 보일러가 고장날까봐 두렵고 고장이 나면 주인에게 전화 걸기 전에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마치 내가 죄라도 지은 것처럼 조심조심 말한다.

 

“주거의 문제는 누군가 거리로 나오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 모든 곳에 스며들고 부끄러움으로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146p)

 

‘청년의 주거문제’에 대해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주거의 불안정성은 ‘끈질기게’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니 이것은 개인이 극복할 수 없다.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 예상한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단칸방’ 시절 운운하면서 추억에 사로잡히는 기성세대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어른들의 소싯적 경험이 지금의 청년들에게 조언이 되려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은 거주지가 마련되는 ‘주거 사다리’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버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젊었을 때 고생은 ‘그게 원인이 되어’ 그 후에도 개인을 고생시킨다. 일단 비용자체가 비싸다. 그래서 일을 한다. 학교 다니면서 매일 5시간씩 주 5일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달 임금의 절반을 월세로 내야 한다. 계약이 끝났을 때, 월세는 반드시 상승한다. 부담이 되어 이사를 선택하지만 모아둔 돈이 있을 리 없으니 더 비루한 주거공간을 마련한다. 월세를 내기 위해 ‘매달’ 열심히 살아도 ‘매해’ 자신은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체험한다. 고생 끝에 낙원(樂園)이 오는 게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낙하(落下)만이 있을 뿐이다.

 

“청년주거 문제는 단칸방에서 애 여섯 낳아 키우던 옛 시절을 이야기하며 ‘정신승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71p)

 

주거의 ‘현재’ 문제는 개인의 ‘미래’를 좀먹는다. 지금은 주거비 마련을 위해 시간을 들인 만큼 경쟁에서 뒤처진다. ‘돈과 시간’을 전제하는 토익, 어학연수, 공모전, 자격증, 인턴활동 등의 스펙관리에 투자할 수 없었던 현실의 대가는 가혹하다. 해가 지나갈수록 ‘연봉이 오르지 않는’ 비정규직의 삶이 이들을 기다린다. 이미 누추한 지금의 주거공간은 ‘더’ 나빠진다. 이와 비례하여 내가 경험한 ‘주거문제가 야기하는’ 몸과 마음의 질병은 그 강도를 더해가니 개인의 삶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말 그대로 ‘난민’의 탄생이다.

 

“지금의 도시가 청춘에게 빼앗고 있는 건 그저 ‘월세’가 아니다.

기회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음과, 내일에 대한 상상이다.” (310p)

 

<청년, 난민 되다>는 “‘잘 견디자’고 외치는 게 아니라”(22p) “삶을 담는 그릇, 온전한 그릇으로서의 집”(218p)을 청년들이 누려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실현시키는 정책마련의 가능성도 제시된다. ‘같은’ 자본주의지만 주택의 공공성을 마련하여 ‘다르게’ 살아가는 곳곳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참고로 나는 ‘운 좋게’ 임대주택에 살게 되었는데 ‘공공주택’을 통해 청년들의 주거고충을 줄이는 것에 누구보다 공감한다.

 

하지만 이론이 적용될 현실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나는 ‘임대단지 건설 강력 반대! 우리의 재산권을 지켜냅시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지나쳐야지만 집에 도착한다. 공공주택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나 자신들의 자녀가 난민이 되어서 더 그렇다.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집’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집값을 떨어트리는 것이라면 혐오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 덕택에 앞으로 청년 난민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미래는 어둡다.

 

ps) 이 글은 비파크 레터 (https://brunch.co.kr/@bpark/31) 에 기고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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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한국 자본주의 2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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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분량이 통계를 '읽어주는데'.. 전문가만이 발견할수 있는 좀 더 파괴적인 통계가 제시되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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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외 옮김 / 북인더갭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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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집단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담은 책. '강한' 사례를 통해 분위기 환기를 시킨후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방대한 자료를 적절하게 배치하면서 일관성있게 밀고 나간다. 닮고싶은 작가.

 

이 책은 "그래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라는 더러운 질문으로 멸시의 추악함이 면죄부를 받는 경우가 더 이상 없어져야 함을 분명하게 말한다. 이 추잡한 질문은 일단 '인과관계의 오류'가 있기 때문에 틀렸다. 대부분의 그 이유는 '그렇게 이상한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멸시는 정당화될순 없다. 그것이 '인정'되는 순간, 사회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던져야 할 질문은 보다 '성찰적'이어야 한다. '어떻게' 차브라는 집단이 존재하게 되었는가는 너무 분석적이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 평소에 어떤 '멸시'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가해자는 바로 '나'라는 인식, 그래서 내 스스로가 더러운 '변명'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존재가 되어야지만 사회적 고정관념은 희석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사회에서 노동자계층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는 아이러니는 미국사회에서 특정인종이 차별받는 문법과 동일하고 이는 한국에서 '차별의 정당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일치한다. '차브'를 읽을때는 예전 '기균충' 논쟁이 생각났었다. '기균충'은 기회균등으로 대학입시를 통과한 자들을 무시하는 일부의 소리다. 당연히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멸시를 정당화한다. 오늘 이 리뷰를 적을때는 '맘충'이 생각난다. '맘충'은 개념없는 엄마들을 말하는데, '노키즈존'이 정당화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사회가 상식적이라면 집단을 '멸시하는' 분위기가 곧 여론에 의해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 현대사회는, 그리고 한국사회는 여론덕택에 멸시가 면죄부를 받는다. 달리 '헬조선'이겠는가.

 

"노동계급이 처한 곤경은 보통 '열망의 부족'으로 치부돼버린다. 그들의 곤경은 책임이 있는 특권층들에 의해 조작된 불평등한 사회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 때문이라고 왜곡된다."(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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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말하는 공무원 - 20명의 공무원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공무원의 세계 부키 전문직 리포트 20
김미진 외 지음 / 부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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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특성상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편견, 이를테면 편하니, 노니..등에 대해서 공무원 생활이 "바쁘고 전문적이고 보람차다"고 말하는 홍보책. 그러나 공무원을 준비할자는 읽어볼만하다. 일단 다양한분야가 있다는걸 느낄수있다. 물론 단 한줄도 내부비판은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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