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외 옮김 / 북인더갭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담은 책. '강한' 사례를 통해 분위기 환기를 시킨후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방대한 자료를 적절하게 배치하면서 일관성있게 밀고 나간다. 닮고싶은 작가.

 

이 책은 "그래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라는 더러운 질문으로 멸시의 추악함이 면죄부를 받는 경우가 더 이상 없어져야 함을 분명하게 말한다. 이 추잡한 질문은 일단 '인과관계의 오류'가 있기 때문에 틀렸다. 대부분의 그 이유는 '그렇게 이상한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멸시는 정당화될순 없다. 그것이 '인정'되는 순간, 사회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던져야 할 질문은 보다 '성찰적'이어야 한다. '어떻게' 차브라는 집단이 존재하게 되었는가는 너무 분석적이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 평소에 어떤 '멸시'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가해자는 바로 '나'라는 인식, 그래서 내 스스로가 더러운 '변명'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존재가 되어야지만 사회적 고정관념은 희석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사회에서 노동자계층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는 아이러니는 미국사회에서 특정인종이 차별받는 문법과 동일하고 이는 한국에서 '차별의 정당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일치한다. '차브'를 읽을때는 예전 '기균충' 논쟁이 생각났었다. '기균충'은 기회균등으로 대학입시를 통과한 자들을 무시하는 일부의 소리다. 당연히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멸시를 정당화한다. 오늘 이 리뷰를 적을때는 '맘충'이 생각난다. '맘충'은 개념없는 엄마들을 말하는데, '노키즈존'이 정당화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사회가 상식적이라면 집단을 '멸시하는' 분위기가 곧 여론에 의해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 현대사회는, 그리고 한국사회는 여론덕택에 멸시가 면죄부를 받는다. 달리 '헬조선'이겠는가.

 

"노동계급이 처한 곤경은 보통 '열망의 부족'으로 치부돼버린다. 그들의 곤경은 책임이 있는 특권층들에 의해 조작된 불평등한 사회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 때문이라고 왜곡된다."(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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