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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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스마트폰으로 생소한 어휘의 뜻을 찾아보곤 한다. 그런데,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면서 나는 같은 단어를 무한반복 검색했다. ‘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내가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는 호주 이민이었다. ‘뉴질랜드 이민’, ‘캐나다 이민이 그 뒤를 이었다.

 

책에 몰입할수록(?), 스마트폰 삼매경은 더 심해졌다. 그러다가 실제 이민해서 잘 사는 사람의 블로그를 발견하면 단번에 주객을 전도하여 하루 종일 지구 저편에대한 간접경험에 빠지곤 했다. 그만큼 책의 완독이 늦어졌지만, 덕분에 나는 여태와는 다른 책을 읽은 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용기였다. ‘우와! 이렇게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구나! 그곳은 내가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었어! 나도 충분히 그곳을 갈 수 있겠어!’ 이야말로 위기에서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를 알려주는 진정한 솔루션 아니겠는가. 맞다. 시궁창의 삶은 떠나는 게답이다. 이 간단한 해결책을 애써 무시하고 더 성실하면상황이 개선되리라 믿는다? 그건 주술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을 싫어하는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자본주의의 부작용 때문일까? 아니다. 자본주의는 무서운존재지 싫은녀석은 아니다. 주의를 잘 기울이면 꽤나 효과도 좋다. 주의요망의 의무가 바로 사회에 있다. 그러니 사회가 직무유기를 하게 되면, ‘무서운자본주의가 무서워진다. 자본주의의 원래 속성이 어떠하든 사회는 최소한 고등학교만 나오면 먹고 사는 것은 괜찮은삶을 개인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대학을 나와도 먹고 사는 것조차 해결되지 않는수준에 이르렀다. 이러니 한국보다는 무서운 곳을 찾아 떠나는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사회는 직무유기보다 더한 짓을 했다. ‘틀린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개인들이 스스로 지혜를 발휘했을 터인데, 이 사회는 효과제로인 생존 매뉴얼을 따르라고 끊임없이 선동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태한 개인이라면서 겁박했다.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시작되는 사교육, 국영수 문제집만 푸는 학교생활, 빚내서 떠나는 어학연수, 대학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것만을 배우고, 심지어 좋은 인상을 위해 성형수술까지 하는 개인은 그저 사회가 하라는 것을 열심히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럴수록상황은 시궁창으로 변한다. 이렇게 살아도 평범조차 요원해진 곳에서 자신이 소속된 사회에 어찌 희망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한 사회의 시스템이 완벽히 몰락했다는 것을 개인이 체험한 이상, ‘액소더스는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소설의 주인공 계나문무를 겸비한톰슨가젤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다른 톰슨가젤에 비해 언제 도망쳐야 하는지에 대한 상황파악도 빠르고 또 떠나서도나름 잘 살아간다. 그러니 실망이 절망이 되기 전에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대다수는 오히려 떠나버린계나 때문에 포식자에게 당할 확률이 더 높아졌다. 사회가 얼마나 문제인지그나마 알고 있는 자원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약자끼리의 연대는 더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남은 자들은 다시 머리를 숙이고 그저 살려만 달라고 애원한다. ‘사회의 책임을 추궁하는개인이 사라진 곳은 다시 이상한 해법이 부유한다. 위를 해고하여 아래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는 비상식적인 발상이 개혁으로 둔갑되는 모순은 그렇게 완성된다. 당연히, 한 사회의 토대자체가 안 그래도 엉망인 지금보다도 더부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어 이제 못살겠다. 떠나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건 나태하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옆에 끼고 살 생각이다. 그래야지만 호주 이민이 막연한 꿈에서 구체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하지 않았는가. 참으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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