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 세대 -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올리버 예게스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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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생활을 한지가 1년이 지났다. 초등학생 1학년인 딸에게 //수 혹은 과학을 포함한영역에 대한 사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는 것에 이 정도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줄 몰랐다당연히 하는분위기가 주변에 노출되어 있었고 이는 귀 닫고 살면 되겠지정도의 각오로 뿌리칠만한 수준의 유혹이 아니었다. 입학초에는 '사교육은 무슨!', 이러면서 의미심장한 태도를 보였지만 곧 '시킬까? 말깔?'를 고민하는 지지부진한 시간의 일상화 때문에 힘들어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아이를 '아이답게' 키워야하는 '주의'인 줄 아는데 진짜 고민의 이유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나는 사교육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을 걱정했다기보다 과연 그 고통이 어떤 열매를 보장할수 있느냐는 지극히 '효율적/성과적' 측면을 저울질 했을 뿐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그 '메뉴얼', 그걸 따르면 정말로 이 아이가 행복해질까? 지금 취업이 어려운 수십만 청년백수들이 이런 영어가 '부족'해서 그렇게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역으로 나는 만약 아이가 영어공부 좀 일찍 시작해서 정말로 '삶이 윤택해진다면' 그 정도의 고통은 인간이 감수할만하다고 본다. 그런데 웃긴게 '그럴수록' 이 사회의 모든 지표들은 더 나빠지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눈코 뜰 새 없이, 잠도 줄여가며, 하루 종이 뼈 빠지게 일해봤자 돌아오는 건 많지 않다. 때로는 투잡, 쓰리잡도 하고 이 회사 저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여 스펙도 쌓지만, 내가 간절히 바라는 일자리는 어차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낚아채게 되어 있다. 21세기 지식 기반 디지털 사회가 정확히 어떤 일꾼을 원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회가 원하는 일꾼이 일주일에 딱 40시간만 일하며 많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거기에는 취미 생활을 즐길 시간도,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다.” (14p)

 

롤러코스터인생의 고도는 더 높아졌다(268p)과거의 지침들을 이제 '주술'에 불과하다.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더 피곤하고 호랑이에게 물려가서 정신을 차리면 산 채로죽는다는 명백한 사실만이 부유한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심지어 그걸 '손'에 전부가 쥐고 있지만 삶은 녹록치않아졌다. "풍요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식의 상황은 분명 처음”(28p)이다. 처음이니 메뉴얼이 없다. 그래서 그래서 고민이다. maybe 할 수 밖에 없다섣불리 결정을 내렸다가는 뒷일을 책임지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간을 기준으로 미래를 계획해봤자 무용지물이 될 확률이 높다. 부모 세대가 조부모 세대가 걸어온 길을 인생 계획 지침서로 활용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 할머니 시절에 통용되던 규칙을 어머니 시절에 와서 달라졌고, 아버지 시절의 규칙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규칙이란 게 아예 없는 상황도 많다. (...) 우리 세대는 기준과 지침이 없다. 보고 따라 할 게 없다. 옛 규칙은 이제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로 간편하게 인생을 설폐하던 방식은 이제 결코 통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33-34p)

 

결정이 어려워하는 개인을 설명함에 있어서 '정보의 홍수'라는 시대적 조건을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그렇기도 하니 틀린 말도 아니다. 하루에 웹상에서 축적되는 데이타가 25경 바이트니 말 다 한거 아니겠는가. 이와 '비례하여' 양질의 정보를 선별할 줄 아는 능력이 인간에게 주어졌을리 없다. 하지만 이것이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오롯히 설명할순 없다. 정보의 홍수라는 건 단순히 정보가 '많아졌다는 점'도 있겠으나, 어제 '선택되었던' 정보들의 무용성이 확인되면서 '선택되는' 정보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p.s. (1) Generation Maybe. 책의 원제다. 어디에도 장애란 표현은 없다. ‘갈팡질팡’, ‘우유부단정도로 설명해도 충분한 것을 장애란 말을 사용하는 건 이 표현이 이미 한국사회에서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선 이 지점을 '장애'의 범주에선 결코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문제로서' 이해되어야함을 경고하는 지점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만큼 한국은 '우유부단'을 어떤 결핍의 증거로서 본다는 말이다.


p.s. (2) 문장 하나하나의 촌철살인은 상당하나 전체적인 전개가 조금산만하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각계의 다재다능한 스타와 여러 예술 콘텐츠들을 병렬식으로 나열하면서 촌철살인 문장의 설득력을 높이고자 했지만 너무 많이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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