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 역사적 자료에 기초한 초대교회 모습 ㅣ 1세기 기독교 시리즈 1
로버트 뱅크스 지음, 신현기 옮김 / IVP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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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초대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까? 교회의 전등을 키면 불이 들어오고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있고, 초대교회보다는 좋은 시설이 현대에 존재하고 있다. 낙후한 시설(현대의 기준에서 본 객관적인 기준)과 좁은 자리가 있는 모임 장소, 새로운 사람이 오면 앉을 자리가 있는지 양해를 구해야하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따뜻함과 환대, 책에서 말하는 쾌적한 장소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이유가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유오디아에게 듣기로 아굴라와 브리스가는 손대접 잘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이따금씩 방문객을 한 번에 수개월씩 투숙시키기도 했다. 실내는 서늘해서 기분이 상쾌했고, 바깥에서 받은 한낮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거리 밖에서 마주친 혼잡함에 비하면 고요하고 행복했다.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중 발췌, P.27-28

실내가 서늘하여 한낮의 열기를 식혀 준다는 말은 그 당시의 온도와 관련된 시대상을 반영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손대접하기를 잘하기로 소문난 브리스가(브리스길라의 애칭)와 아굴라의 모습으로 인해 쾌적함을 낳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객관적인 의견이지만 집주인의 손대접과 섬김으로 인해 100% 쾌적한 환경이 아닐지라도 그 공간에 주는 따뜻함과 환대가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식탁마다 큰 접시에 여러 가지 고기가 담겨 나왔고, 또 다른 접시에는 온갖 채소가 담겨 나왔다. 틀림없이 오늘을 위해 한 주 내내 아껴두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또다시 내가 먼저 대접을 받았다. 작은 생선 한 마리와 순무와 콩을 덜어 낸 다음 그 위에 향이 좋은 소금 소스를 얻었다. 또한 맞은편에서 아리스도불로가 자기 종의 접시 위에 음식을 덜어주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음식을 덜어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것과 정확히 똑같은 종류를 똑같은 양으로 담았다. 내가 자라면서 본 경험에 의하면, 해방 노예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귀빈에게 주는 것보다는 덜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주고, 그릇마저도 다른 그릇을 냈다. 종들은 식당 밖에서 먹는 것이 상례였다.
같은 책, P.42-43

아리스도불로가 자기 종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는 모습,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라는 것을 처음 온 푸블리우스가 느끼고 있다. 그 당시 시대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복음이 들어왔던 조선의 시대상은 어떠했었지? 다시 공부해야겠다) 일들이 초대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처음 세례받고 공동체에 온 두로에 대한 환대도 푸블리우스를 놀라게 한 부분이었다.

이 말이 끝나자, 각 가족의 가장을 포함하여 한두 명이 방을 가로질러 와서 두로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가 그들의 공동체에 온 것을 환영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돌보겠다는 서약을 했다. 두로는 이 말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고,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했다.
같은 책, P.61

공동체의 환대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사람을 세우고, 사람이 그동안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힘과 격려를 허락한다. 대형공동체라 해서 환대를 못하고 소형공동체라 해서 환대를 잘한다는 흑백논리도 맞지 않다.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환대를 경험하고 환대를 베풀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환대는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환대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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