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대천덕 지음, 전강수 외 옮김 / 홍성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하나님의 것, 성경에서 다루고 있는 주되심(Lordship)의 영역,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다룰 수 있는 대신부님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번만 해도 세 번째로 읽는 독서이다. 왜 이렇게 이 책에 집중하고 집착을 하게 되었을까? 필자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연약해서가 아니다. 유업 또는 기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의하고 싶었고, 더 자세히 이해하고 싶었다(관련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외국인인 대신부님이 한국에 오셔서 토지와 경제에 관련된 부분을 이야기할 정도로 왜 중요한 것일까 생각이 들어서 다시 이 책을 빌려 보게 되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레 25:23)

토지를 무른다는 것은 ‘도로 찾아내다’, ‘저당 잡힌 것을 도로 찾다‘의 의미이다. 성경 안에는 토지를 사고 파는 개념이 없다. 임대하고 임차하는 개념은 있지만, 토지를 사고 팔지 않는다. 토지는 유업이다. 각 백성들과 각 가문들에 이어지는 공정한 분배의 유업이다(공산주의와 확연히 다른 것은 성경은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만 공산주의는 소유를 국가가 사유화하기 때문). 그리고 희년이라는 제도로 인해 토지를 보호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바알법으로 인해 토지를 사유화하고 토지를 사고 팔지 않는 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부를 더 쌓게 되었다.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의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엣바알의 직계 후계자들이었다. 마침내 로마가 페니키아의 바알주의 토지법을 채택하였는데, 그것은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로마에서 확립된 바알주의 토지법은 유럽, 영국 그리고 서방 세계로 퍼져 갔다. 사실 페니키아식 토지 제도는 엣바알 이전, 즉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기 전의 가나안 땅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대천덕,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중 발췌, P.41

서방세계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토지의 제도들이 바알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 지주들은 배불러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하고 놀라운 일들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일어났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토지의 주인, 경제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엣바알의 관습을 따랐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업으로 주신 토지, 현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희년은 공평하고 광범위한 땅의 분배에 근거한 토지 보유 형태를 보유하고, 극소수 부자들의 손에 토지 소유권이 축적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온 땅을, 그 자원들에 대해 하나님과 공동 청지기로서 행동하는 모든 인류에게 주신 것이라는 창조의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있는 레위기 25:23의 “토지는 나의 것이다”라는 천명과 모든 인류와 관련해서 시편 24:1에 선포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천명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 [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 중 발췌, P.285

어떻게 보면,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개혁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주되심의 영역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거대한 바알법의 잔재 아래, 작은 개미 같은 존재가 어떤 개혁도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토지는 다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시고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제도를 만드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토지를 이용해서 부를 쌓고,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의 나됨을 인정하고 탐욕으로 갈 것인가?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며 책임감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

#북스타그램 #토지는다내것이다 #희년 #토지가치세 #대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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